베르사이유 궁전 앞. 입장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
궁전 뒷편 인공호수, 오늘도 역시 쾌청한 가을날씨라 걷기에 알맞은 날씨였다.
마리앙트와네트를 위해 만들어진 왕비의 촌락의 예쁜 농촌 주택들.
당시에도 그랬을테고..... 지금도 사람들이 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호수 당시에 어떻게 만들었을지...
펼쳐져있는 지도에 우리나라 크기가 아주 크게 그려진 지도.
우리나라 사람이 세웠다는 조형물.
창문 손잡이 하나에도 온갖 공이 들어있으니....
<수많은 사람들의 발에 의해 닳고 닳은 베르사이유궁전 계단>
파리에서는 보행자들이 신호 무시하기 일쑤다.
대부분 운전자들이 양보하는 편이다.
이러다가 서울에 가서도 신호무시 할까 걱정이다.
오늘은 베르샤이유 궁전 가려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가는 중에
우리에게 에펠탑 어디로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다 있다. 험험!! 우리가 갈켜주지...
베르사이유 궁전 앞에는 엄청난 사람들로 인산인해.
줄은 뱀처럼 구불구불 몇 굽이를 돌았는지 모를 지경이다.
여기서 기다리느라 시간 낭비하게 될 것 같다.
우린 베르사이유 궁전은 오후에 보고 궁전 뒤편 왕비의 촌락을 먼저 보기로 하였다.
가는 길에 덮게 없는 차를 타고 가는 한 가족이 있었다.
차에 타고 있던 초등생정도의 꼬마아이가 우릴 보고는 온갖 국가의 인사말로 인사를 한다.
헬로~봉쥬르~니하오~그러다가 안녕~ 오!!! 안녕~~이란 우리 인사말을 다 아네? 감격.
그래서 나도 안녕 안녕 안녕!! 세 번을 대답해 주었다.
이 촌락은 마리앙트와네트를 위해 지어 놓은 곳이다.
마리 앙뜨와네트는 이곳에서 목석같은 남편 대신 다른 남자와 밀회를 즐기기도 했다.
남편인 루이16세는 부인에겐 관심이 없고, 사냥이나 열쇠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 열쇠 수리공이었으면...더 행복한 여생을..보내지 않았을까?
왕비의 촌락을 나와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향했다.
오전보다는 사람이 줄었으나 여전히 오래 기다려야 한다.
우리 앞에는 인도 남자가 줄을 서 있었는데,
잠시 후 딸인 듯한 아이가 서고 남자는 어디론가 가 버렸다.
한참 지나서 이제 남자가 오고 딸이 없어졌다.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가족들은 한곳에 앉아 짐과 함께 쉬고 있고
아빠와 큰 딸이 번갈아가면서 줄을 서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도에서 20년쯤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두 아이를 나았단다.
엊그제 영국에서 프랑스로 건너와 내일은 스위스로 갈 예정이란다.
우리가 18일 동안 파리에 있을 예정이라고 하니 놀라는 표정이다.
우린 오히려 그들이 놀라웠다. 어린 아이들과 많은 짐을 지고 메고
짧은 시간에 세 나라를 여행 하다니 말이다.
고생을 해도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려는 부모의 마음이겠지 싶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는 사람에 떠밀려가듯 보았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가방 앞으로~~”라고 한국말로 이야기 한다.
사람이 많아 뒤에서 누가 가방에 있는 물건을 손을 대더라도 정말 모를 정도로 많았다.
이 궁전을 짓는데 프랑스 귀족들에게 투자하기를 권했다는데 절대권력 앞에서 누가 감히 거절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울며 겨자먹기로 투자한 공로를 지금 프랑스 사람이 대신 누리고 있는 듯하다.
끝없이 밀려드는 관광객들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 할테니 말이다.
바르사이유 궁전을 둘러보니 현대의 모든 것이 바르사이유 궁전에서 시작되었다고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도 느껴진다.
미술, 가구, 공예, 인테리어, 벽화,악세사리 등등 할것 없이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고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과 유행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리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태리의 유리 가공 기술자들을 몰래 포섭하였는데 이를 눈치 챈 이태리에서 이들을 암살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는 눈물을 머금고 이태리에 정식 로열티를 지불하고 기술을 얻어 왔다고 한다.
그런 한이 쌓여서 그런지 궁궐에 드린 공이 느껴진다.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 안.
앞 사람과 무릎이 닿을 정도로 의자와 의자 사이가 좁다.
체구가 몹시 큰 흑인 여성이 아이 두 명과 함께
우리 옆에 앉아 있는데 보는 내가 다 답답할 지경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의 체격이 다른 유럽 사람들에 비해 작아서 그런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프랑스산 고속철인 테제배도 의자 사이가 좁은 게 그 이유였을 것 같다.
오르셰 미술관 야간 개장하는 날이라서 저녁에 또 다시 오르셰를 갔다.
야간이라서 관람객도 적어서 관람하기 좋았다.
안 본 것이 눈에 뜨이고 본 것도 다시 보니 새롭게 보이고,
같은 것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게 마련이다.
드가의 ‘압쌩트’라는 작품 앞에 섰을 때
나는 술이 취해 눈이 풀어진 여자의 게슴츠레한 눈이 들어오는데
마가렛은 탁자 다리가 없는 것이 거슬려서 명화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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