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먹던 술을 조금 먹었다.
어제 일인데도 머리가 아직도 휭~~하다.
술이라~~
술에 대한 가장 오랜 기억하나.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어느 토요일.
집에 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는 우리들을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막걸리를 사 가지고 오라는 심부름이었다.
- 막걸리요?
- 그래~ 책을 다 떼었으니 책걸이를 해야지.
우리는 선생님께 막걸리 두 통을 사다 드리고 나서 운동장에서 축구를 계속 하였다.
한참 공을 차다 목이 말라 수돗가에 갔다가 선생님들께서 드시고 남긴 막걸리 통을 발견했다.
옛날 막걸리 통은 양동이 크기의 아주 커다란 막걸리 통이었다.
드시고 남은 막걸리 통에는 꽤 많은 막걸리가 남아 있었다.
목도 말랐던 참에 벌컥벌컥
남긴 막걸리를 다 들이킨 우리들은 더워서 서늘한 실내로 들어왔다.
그러다가 납작한 막걸리 통 뚜껑으로 실내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어른 주먹보다 조금 큰 플라스틱 뚜껑은
아이스하키의 '퍽’처럼 반들거리는 복도 위를 매끄럽게 미끄러져서 실내축구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새로운 놀이를 발견한 우리들은 서늘한 복도에서 신나게 운동장에서 이어 축구 2차전을 하였다.
그때 마침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청소를 하시는 시간이었다.
아주머니들께서 축구하는 우리가 걸리적거리니까 집에 가라고 소리를 치셨다.
그런데도 우린 아랑곳 하지 않고 축구를 계속 하였다.
그러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서 학교에서 일하시는 아저씨를 불러왔다.
그런데 그만, 술을 먹은 게 화근이었다.
우리는 아저씨가 만류하시는데도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서 멈추지를 않았다. 화가 난 아저씨가
“술 쳐 먹고 난동부리는 이런 놈들은 교장선생님께 말씀 드려서 다 퇴학시켜 버려야 돼!"
" 몇 반 놈들이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우리들은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학교 밖으로 도망을 나온 우리는 각자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으로 오면서 학교 아저씨가 우릴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꺼림칙했다.
집에 돌아와서 당시 암울했던 집안 분위기와 겹쳐서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기억을 잃어 영문도 모르는 엄마도 날붙잡고 우셨다. 집엔 아무도 없어 다행이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우울하게 토요일과 일요일을 보냈다.
다행히 퇴학이나 정학 등의 징계를 받지는 않았지만 집안의 우환과 더불어
절망의 무게감이 점점 더해갔던 고등학교 2학년 때의 한 장면.
지나고 보니 쉽지 않은 시절을 잘도 버텨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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