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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22년을 어떻게 견디셨을지......

기억을 잃은 채 만 4년을 몸져 누워계시다가

몸시 춥고, 눈도 많았던 겨울... 엄마는 돌아가셨다.

엄마의 병구완을 하느라 아버지는 온갖 고생을 다 하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혼자되신 그 무렵.

우리 오남매는 한 명도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어느 날 아버지 친구 분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결혼 생각하기 전에 아버지 먼저 장가 보내드려야 한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우리 오남매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해던터라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어느 날 누이들과 함께 아버지께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잠시 생각하시던 아버지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가 아주 어린 시절.

하루는 할머니께서 저녁을 차려놓으시고는

할아버지 진지 잡수시라고 말씀드리라고 하시면서 찾아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다.

주변을 아무리 다니며 찾아보아도 할아버지가 계시질 않았는데

마침내 찾은 곳이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의 술집이었다.

 

할아버지는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얼굴이 벌개져서 희희낙락하고 계셨다.

더욱 아버지를 놀라게 한 것은 할아버지 옆에는 술집 여자가 앉아있었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받은 충격이 너무 컸고 할머니가 너무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내가 결혼을 하면 할아버지처럼

아내를 두고 저러지는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결혼이 자식들인 우리 결혼에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떤 사람은.... 부모가 잘못하면, 그 잘못을 그대로 본받아 어른이 되고나서

부모처럼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나는 절대로 부모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당연히 전자인 경우가 후자인 경우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된다.

우리 오남매가 무탈하게 자라 지금까지 온 것도 아버지가 후자인 경우였기 때문일것이다.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 뒤 22년을 홀로 힘겹게 

우리 오남매를 시집 장가보내느라고 고생하셨다.

우린 아버지의 희생을 먹고 자란 것이다. 하지만...

무심한 하늘은 아버지를 엄마처럼 4년 동안 몸져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시게 하였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 살아 생전에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었고 불만도 많았다.

 

당시 혼자되셨을 때의 아버지 나이...... 54.

 

<부모님 산소 주변에 많았던 꿀풀....우울한 나날이다 보니 묵은 기억중에서 울적한 기억이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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