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라디오로 대중가요를 들으면서
들려오는 노래의 가사 받아 적는 일을 무슨 숙제하듯 하였다.
노래를 들으면서 한 번에 가사를 다 받아 적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절 밖에 쓰지 못했다면 다음에 그 노래가 다시 나올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그 노래가 나오면....옳지~~하고 기분이 좋아져서
얼른 필기구를 집어 들었다.
책상 위엔 항상 가사를 적은 공책이 펼쳐져 있었다.
2절까지, 때론 3절까지 다 받아 적고나면
무슨 큰일을 마무리 한 것처럼 아주 흡족해했다.
만족감에 취해 다 적은 가사를 보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지금처럼 TV가 있어서 가사가 자막으로 나오는 걸보면
참 알 수 없는 열정에 휩싸여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도 든다.
노래 가사를 적은 공책을 보면
연필,검은색 볼펜, 붉은색 볼펜, 푸른색 볼펜,,,,등등
적을 때마다 다양한 필기도구가 동원되었다.
주변에 눈에 들어오는 필기도구를 아무거나 집어들고 썼기 때문이다.
아래 위로, 때론 좌우로 씌어진 방향도 제각각이다.
어떤 경우에는 가수들이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뭐라고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이해가 안 되는 노랫말도 있었다.
게다가 급히 적다보니 내가 써 놓고도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가사가 어울리나? 하고 의아해 하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들면
<울고 넘는 박달재>의 경우에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아니? 하필이면 왜 왕거미가 집을 짓는 고개라고 했을까?
진달래 피는 고개라고 하면 더 서정적이지 않을까?
노래가사에 징그러운 왕거미가 나오다니...ㅎㅎ
무랑나 저고리? 물하나 저고리? 물항나저고리?
물항라 저고리? 어떤게 맞는거야?
그런데 물항라가 뭐지?
<처녀 뱃사공>에서
큰 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라는 가사에서는
큰 애기가 뭐지? 애기가 얼마나 크면 뱃사공을 할까?
제일 맏이를 말하나?
<번지없는 주막> 이란 노래 가사에서는
능수버들 태질하는~~이라는 가사에서는 ‘태질하는'이 무슨 뜻일까?
하면서 낱말 뜻을 짐작해보기도 했다.
어쨌거나 옛날노래는 낭만적이고 서정적이란 생각이 드는데
요즘 노래를 들어보면, 가사말이 직설적이고 때론 독설적이기까지 하다.
‘키 180에 연봉이 6천인 남자가 미쳤다고 너를 만나냐~~’
‘뭔가 애~매한 놈들이 자꾸 꼬인다는 건
니가 운이없는 게, 기다림이 모자란 게 아냐. 그냥 너 별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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