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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좋은 이별

  우리는 사랑도 하지만 이별도 한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고 달달하다. 유혹적이다.

하지만 이별에 대해서는 우리는 안 좋은 것으로 여겨서 이별을 처리하는 데 서투르다.

 

 

오래 전 내가 결혼을 하려고 할 때 주례부탁을 하러 아버지와 갔던 모대학학장님께 갔을 때

그 분은 막 정년퇴직을 하고난 뒤였다.

주례부탁을 드리러 갔는데 생각보다 건강이 안 좋으셨다.

그 분의 말씀인즉 평생 교직에 몸담았었는데 어느 날 퇴직을 하게 되니 큰 상실감에다가 떠나온 학교가

나를 버렸다는 생각이 들고 누워있는데 책꽂이에서 책이 본인의 몸 위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환상에 빠지는 등...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다.

도저히 결혼 주례를 설 형편이 아니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분은 이별에 대해 충분한 애도기간을 갖지 못하셨던 것 같다.

 

<능소화가 벽을 타고 기어오르다가 내가 떼어낸 자리이다. 능소화의 이별 자욱이다.>

 

이렇게 우리는 퇴직,이직,사별,이혼,연인과의 이별, 그리고 사소한 필기구를 잃어버릴때도 상실감을 느낀다.

 

소설가 김형경이 쓴 <좋은 이별>은 우리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별에 대해 갖는 마음상태를 잘 다스려야 함을 일깨워준다.

내가 쓰던 볼펜을 잃어버린 것에서부터, 주변 사람의 죽음, 그리고 실직, 등등 사람과의 이별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이별에 우리는 상실감을 느끼는데 그 상실감을 어떻게 지혜롭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유익한 책이다.

 

 

만 12세 이전에 사랑하는 대상을 잃거나 사랑의 감정을 박탈당하면 성인이 된 이후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문제를 안은채 무사히 청년기를 무사히 넘긴다 하더라도 중년의 입구에서 정신이 붕괴되는 중증 우울증과 맞닥뜨리게 된다.

영유아기에 엄마를 잃는 일은 특히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는데 할머니나 고모등 대리 부모에게 양육되는 경우에도 같은 결과를 낳는다.

부모의 폭력이나 무관심, 우울증도 사랑을 박탈당하는 경험이 되어 자녀의 삶에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남긴다고 한다.

 

또한 이별은 돌던 팽이가 한 순간에 멈추지 않듯이 이별의 대상을 향한 마음은 쉽게 회수가 되지 않는 법이다. 바로 애도 기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때에는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함부로 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땐 다른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한 때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난 후

쉽게 다른 이성에게 빠져서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는 경우도 쉽게 애도기간을 보내지 못한 경우일 것이다.

 

떠난 가족의 흔적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일을 죽음을 부정하는 가장 흔한 경우이다. 사망한 아들이 머물던 방을

그가 쓰던 물건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부모이야기를 간혹 듣는다. 그곳에 이미 비현실적인 공간이 만들어져 있듯,

당사자의 내면에도 왜곡된 현실이 창조된다. 상실을 부정하는 태도가 나쁜 이유는 그처럼 현실을 바로 보는 눈을 잃게 된다는데 있다.

 

떠난 사람과 관련된 물건을 보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중간 대상들은 애도작업에 도움이 된다. 그 물건을 보면서 위안을 느끼든 고통을 받든 그것 역시 애도작업에 도움이 된다.

소중했던 물건들이 자연스럽게 잊히거나 떠나보내고 싶어지면 애도가 완료된 셈이다.

하지만 이별후 한가지 사물에 꽂혀 미친듯이 수집하거나 특정 취미에 온 재산을 털어 넣는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물들과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어린이가 애완견을 잃었을 때 재빨리 다른 강아지를 사줄게 아니라 잃은 강아지에 대해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준다.

슬퍼하고 낙담하는 시간을 보낸다음에 괜찮아지면 그때 다른 애착 대상을 마련해 준다.

상실 이후에는 과식 폭식이나 음식 거부 증상 뿐 아니라 먹는 기능에 오작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적 증상 ‘구토’도 상실감에 이어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삶이란 흘러가는 순간을 단호히 놓아주는 과정임을 마음에 새긴다.

 

                                         <좋은 이별/김형경 애도심리 에세이/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