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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교장 선생님~ 그건 너무 심하셨네요.

 

 

 

  이 분과 4년을 근무했다는 것은 저에겐 큰 행운이었습니다.

요즘처럼 학교장의 비리가 터져나오는 걸 보면서 말입니다.

  이 분이 교장 선생님으로 부임하셔서 하신 말 중에 인상적인 것은

"선생님들께서는 내 교실 내 복도, 그리고 수업에만 신경쓰시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고학년 아이들 특별구역 청소라는 것도 없앴습니다. 교장실은 교장선생님이,

보건실은 보건교사가 담당하는 식으로 하면 된다는 생각이셨습니다.

 고학년을 하다보면 특별 구역 청소하라고 아이들 내려보내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고

청소하는 아이가 잘 못하니 착실한 아이로 바꿔서 보내달라느니 하는 말도 듣곤하지요.

교실 청소 시키기도 벅찬데 말입니다.

 

  새 학년 업무분장을 짤 때에는 본인이 학교 업무 중에서 가장 하기 힘든 업무 분장 두 가지를 맡으셨습니다.

혹시 학교 규모가 작아서 그런가보다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50학급이 가까이 되는 제법 큰 규모의 학교 입니다.

 교장 선생님이 맡으신 업무 중 하나는 학교에서 나가는 가정통신문은

**학교장 뒤에 본인의 이름으로 나가니까 본인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요즈음도 어느날은 교사인 나조차 훑어보지 않는 가정통신문이 하루에 3장씩 나가기도 할 때면 그 생각이 납니다.

 녹음이 우거지는 6월에 댁내 평안하시길 빕니다. 뭐 이런 의례적인 문장으로 시작되는 가정통신문...
종이도 절감할 겸 의례적인 문구는 생략하고 A4용지에 앞뒤로 여러 가정통신문을 편집 해서 내보냅니다.
학부모들도 편하고 교사들도 한 두장 앞 뒤로 다 나가니 어떤 내용인지 훑어보기도 편했습니다.

  제가 학교 신문을 한 달에 한 번 발행하는 걸 맡아서 한 적이 있었는데

겨우 4쪽 되는 것도 꽤 힘겨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분은 한 달에 한 번도 아닌 일 주일에 한 번씩 그것도 가정통신문을 포함한 학교 소식지를, 많을 때는 6쪽이 나가기도 하는걸, 본인이 하시는 것입니다.

가정통신문 나갈 것 있으면 간단히 메모해서 교장실 책상 위에 놓아달라는 것이 선생님들께 하신 부탁의 전부였습니다.

 

 또 하나 맡으신 업무는 당시에 가장 골치 아픈 업무 중 하나인 네이스업무였는데

(당시 하도 이 업무 맡은 선생님들이 학교마다 골머리를 싸매던 터라 네이스 담당 선생님들 카페까지 생겨나서 하소연도 하고 업무도 공유하고 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업무를 본인이 맡아서 하셨습니다.

물론 교장 선생님 본인이 컴퓨터를 잘 다루기도 하시니까 하셨지만 그게 어디 잘 한다고 다 하는 건 아닐 것입니다.

 

 얼마 전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한 이야기 중에
21세기 CEO란, 수평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바로 교장도 학교의 CEO라면, 

이 분은 권위주의적으로 상명하복을 고집하는 CEO가 아니라

교사들과 같은 위치에서 선생님들을 돕는 진정한 교장선생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선생님들에게도 존댓말을 쓰셨던게 안철수 교수와 비슷했고 항상 수업에 지장을 주는 공문이 있다면 가지고 오라고 하셨지요. 그럼에도 본인 말씀은

"나는 교장이나 교사로 잘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교감이나 과학 부장 역할은 좀 했다고 생각하지만..." 

 

 센스도 있으셔서 한 번은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선생님들 드시라고 피자인지 떡인지를 학년 별로 돌리셨습니다.
이유인즉, 백일째 되는 날이라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이 분의 성함이 배길재(백일째) 교장선생님이 십니다.

(본의 아니게 성함을 밝혀서 폐가 되지 않을까 염려 됩니다만 다른 학교로 전근가셔서 작년 9월 퇴임하신지라 감히 성함을 밝힙니다.)

 

 이 분의 여러가지 일화를 열거하자면 한이 없지만 청렴결백한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신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 댁으로 과일 한 상자를 택배로 보내셨습니다.
같이 근무하게 된 선생님이라면 뇌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학교로 가신 분이 보내셨으니 모르는 척 받으실 수도 있는데, 그걸 다시 택배로 그 선생님 집으로 돌려 보내신 것입니다. 

그때 다들 한마디씩 했지요. "그건 정말 너무 심하셨네요."

 

 아~~ 그런데 저는 배교장 선생님을 교직 생활에 멘토로 삼아야 겠다는 마음 뿐.
지금 부형이 가져다 준 비타500을 돌려 보내지 않고 쭉쭉 빨고 있습니다.  
오!! 그런데 이런 횡재를...... 여러분~~ 기뻐 해 주십시오~~ 병 뚜껑에 '축! 당첨 한 병더!!' 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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