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경험으로는 30대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니었나싶다.
결혼생활의 쓴맛도 고달픔도 알게 되는 나이이면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한 인간으로서의 실존적인 고뇌,
내게 남아 있는 가능성을 따지며 무엇을 새로이 시작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는 초조함이 극도에 달했던 때였다.
-.호감을 갖고 몇차례 만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만날 때마다 우유를,그것도 따끈하게 데운 것으로만 마셨다. 나는 그것이 의아했고
그는 내가 커피만을 고집하는 것에 대해,왜 몸에 나쁜 커피를 마시는가 하고 못마땅해했다.
결국 그와는 곧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커피만 마셔대는 여자의 퇘폐성,불건강함이 싫었을 것이고
나는 나대로의 고정관념으로 우유만 마시는 남자의 유아성이나 생활성,동물적인 건강성이 싫었던 것일게다.
-.소설을 쓰는 일은 둘째치고 저는 그곳에서 혀가 굳어지는 듯한 무서운 공포를 맛보았습니다.
자리를 옮겨 가면서부터 한국은 시공간적으로 아득히 멀어지고 몸을 담게 된 외국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제 땅을 떠나자 언어가 힘을 잃고 실감을 잃어버리는 따라서 자신의 실체감이나 살아가는 실감을 잃어버리는 것은 참 이상하고 무서운 경험이었고
저 자신 얼마나 언어에 즉, 문학에 의존해 살아왔는가 하는 새삼스런 깨달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작가에게 있어서 유일한 수단이고 무기인 언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 제 땅과 언어를 떠나는 것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 때문에 생긴 강박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소설을 한 편도 못 쓰고 남편과 치열하게 싸웠던 기억만을 지닌 채 피폐해져 돌아왔지요. 얼음을 녹일 때 불이 아닌 물을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 막힌 글은 글로써 싸우고 뚫고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소설에 대한 고민이 곧바로 소설을 쓰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의심과 소설이 뭐지?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지? 끊임없이 자문자답하며 소설쓰기가 아닌,'진짜 소설을 써야 한다는'고민 속으로의 도피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내 마음의 무늬/오정희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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