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가장 큰 사회적 반응은 전 국민의 영어 잘하기로 나타났다.
위로는 모든 대기업의 감원대상 영순위로 영어 잘 못하는 사원들이 꼽혔고,
아래로는 유치원생들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까지 영어학원에 보내는 극성스런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은 정부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영어 조기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한 결정과 직결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회적 반응은 그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최근 이 삼년 사이에 뜻도 모를 영어 간판들이 거리마다 넘쳐나고
새로 태어난 수십 종의 대중잡지 이름이 모두 영어고, 심지어 신문사들마다 지면 표시를 영어로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뿐이 아니다. 며칠 전에 어느 신문이 특집으로 보도한 것을 보면 유치원에 다닐 아이들이 유치원 대신 영어학원을 다니는데,
한 달 학원비가 칠십 만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중대한 문제는 그 학원에서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학원에 들어서서
나갈 때까지 영어만을 써야 하고, 아이들의 이름까지도 톰,메리 하는 식으로 바꿔 부른다는 사실이었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가슴이 섬뜩했다. 창씨개명을 강압하고,
조선말을 쓰면 체벌을 가했던 일제 시대의 소학교 다를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던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때는 강압이었고 지금은 막대한 돈까지 내가며 우리가 솔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공부를 위해
해외연수며 학원비 따위로 한 해에 쓰는 돈이 팔 조원에 이르고 있다.
일억의 자금이 없어서 서업전망이 큰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있는 형편에
팔 조원이라는 그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하는 영어공부의 효과는 과연 얼마나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모국어를 익히려고 미국에서 온 한 여학생은
“왜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려고 그렇게 정신들이 없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려고 우리나라에 와 있는 데위율리아나라는 외국 학생은 한국말을 두고 왜 그렇게 외국어를 많이 쓰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언어는 인간을 지배한다. 영토를 빼앗긴 민족은 영토를 되찾을 수 있지만 말을 빼앗긴 민족은 스스로 소멸한다 <조정래 /'누구나 홀로 선 나무' 중에서 >
#이 글은 1996년 문학사상 11월호에 실렸던 글의 일부이다.
이 글에서는 4학년 부터라고 되어있지만 지금은 3학년부터 가르친다.
어떤 이는 유창한 영어 실력이 좋은 직장과 국가 경쟁력을 보장하는 마법의 열쇠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그렇다면 40만원 월급의 홍콩 가정부로 취직하기 위해 고국을 등지는 영어 잘하는 필리핀 여성들의 행렬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또 초등학교 입학과 더불어 국어(힌두어) 대신 영어부터 배우는 인도는 왜 여전히 개발도상국 굴레를 못 벗는 걸까? 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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