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글쓰기 과제로 이런 것을 내준 일이 있다.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그것에 대해 적을 것.
학생들은 일주일 동안 자기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나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다음 수업 시간에 내게 승낙을 받으면 그것을 실해하고 집으로 돌아와 글로 적었다.
엉뚱하게도 청와대 앞을 서성거리며 침묵시위를 벌인 여학생도 있었고,63빌딘을 걸어서 올라가겠다고 한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공부하는 한 여학생은 이런 주제를 제시했다.
“가리봉동의 다방에 가서 커피 마시며 책 보기” 그녀는 평생 한 번도 그 동네에 가본적이 없었다.
아니, 근체에도 가본 일이 없었다. 평소에 스타벅스나 커피빈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컴퓨터로 과제를 한 일은 많았다.
그러나 그것을 가리봉동의 다방에서 한 적은 없었고,아니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우선 거기가 너무 가깝다는 데 놀랐다.
심리적으로는 거의 대전쯤에 있을 것 같았던 그곳은 그녀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로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웬 여대생이 다방에 들어서자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여자 종업원들이
실눈을 뜨고 그녀를 살폈고(거기는 진짜 다방이었던 것이다.)이내 손님이라는 것이 분명해지자
종업원들의 긴장도 누그러지고 그녀 역시 그 공간에 서서히 익숙해져갔다. 그녀는 그때의 경험을 소상히 적어 과제로 제출했다.
처음에는 공포를 느꼈고(“절 어딘가로 팔아버릴 줄 알았어요?”)
그 다음에는 호기심이 들었고 떠날 때가 다 돼서야 비로소 그들이 친근하게 느껴지더라고 했다. 여행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낯선 도시에 도착할 때,공포와 호기심,친근감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그 도시를 ‘알아가게’된다.
가리봉동의 다방에서 책을 읽은 그 학생은 그곳에 가기 전까지는 서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즉각적이고 기능적인 판단을 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앎에 갇혀 있다.
그것을 깨달은 후로는 나는 어느 도시에 가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말을 다 신뢰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들은 ‘알고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앎에 ‘갇혀’있다. 이런 깨달음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갇힌 앎을 버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이를테면 돈암동의 골목길이나 노량진의 수산시장을 헤매며
그곳에서 여행자처럼 사진을 찍고 음식을 사먹고 그때까지 그 동네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하나씩 교정해가는 것이다.
김영하의 <여행자 도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