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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오빠가 돌아왔다.

 

가족이란 '덜거덕 거리는 푸대자루'라고 했지만 여기서는 '덜거덕 거리는 푸대자루' 그 이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오빠가 돌아왔다'에서의 가족은 '송곳이 삐죽 튀어나온 양파망'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법한 가족.

현실에서는 보기힘든 가족.

그렇지만 겉모습빼고 속만 본다면 요즘 여느 가족이나 다를 바 없는 가족.

그 가족 이야기다. 도저히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가족이다.

단지 한 지붕 아래서 살기만 할뿐.

극단의 가족을 그려놓고 지금의 우리 가족들 보고 반성하라고 그러는 것 같다.

 

김영하는 지금 돈 다 털어 세계여행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일본에서 찍고 쓴 책은 벌써 나왔던 것 같다.

 유럽에서는 그의 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책을 번역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아무튼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신세대 작가로 좋은 글 많이 남겼으면 싶다.

 

-.아빠는 혈기방장한 오빠에게 이제는 도저히 게임이 안된다.

그러면서도 가끔 저렇게 오빠한테 개기다가 두들겨 맞는걸보면 정말 구제 불능이다.

개도 몇대 맞으면 꼬리를 내린다는데 저 아빠라는 인간은 똥개보다도 지능지수가 낮은 게 아닐까 가끔 의심스럽다.

 

-.오빠는 열여섯까지 아빠한테 죽도록 맞고 자랐다.

아빠가 오빠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함께 사는 것만도 다행이다.

아빠는 실컷 두들겨패고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오빠를 홀딱 벗겨 집밖에 세워놓기를 좋아했다.

그러고는 깡소주에 취해 세워놓은 것도 잊어버리고 고구라져 잠들기가 일쑤였다.

옷가지를 챙겨 밖으로 나가보면 팬티만 입은 오빠가 오들오들 떨며 아빠을 욕하고 있었다.

개새끼,씨발새끼,좆같은 새끼, 내가 가만 두나 봐라.

 

 그 예언은 열여섯이 되자 현실이 되었다.

오빠는 술에 취해 달려드는 아빠를 주먹으로 때려 눕히고는 줄넘기줄로 꽁꽁 묶어놓고 집을 나갔다.

아빠는 줄넘기줄에 묶인 채로 아들을 저주하다 모로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그후로 4년동안 오빠는 집에 한번도 들어오지 않다가

스무살이 다 되어서 그러니까 올해 초 마치 점령군처럼 당당하게 입성했다.

감히 어딜 기어들어오냐며 달려들던 아빠는 오빠의 발길질 한방에 나가떨여졌고 그때부터 오빠가 법이었다.

 

-.아빠는 전문고발꾼이다.

동사무소 박주사가 인간 말종같은 아빠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이유는

일년에 수백건의 민원을 제기하는 그야말로 민원제조 공장이기 때문이다.

주차구획선,공사장의 분진,민원인을 대하는 공무원의 태도,구청홍보지의 오탈자, 심지어 구청장의 자동차 모델과 연식까지 문제삼는,

그야말로 지방자치제가 낳은 새로운 인간형이었다.

 

-.우리집 먹이사슬은 이렇다.

오빠는 아빠를 이긴다. 아빠는 엄마를 이긴다. 그런데 엄마는 오빠를 이긴다.

나는? 엄지공주다. 나는 너무 작기 때문에 누구도 나따위를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싸움은 그 셋사이에서 늘 벌어진다.

 

-.술주정뱅이에 고발꾼인 아빠와 그 아빠를 작신작신 두들겨패는 택배회사직원인 아들,

그 아들의 미성년자 동거녀, 오피스텔 건설현장의 함바집 아줌마,

마지막으로 그 아줌마의 전남편이 탐내는 교복의 주인인 중학교 1학년짜리 소녀.

 

-.아빠는 집에 돌아와서도 술이 안 깨 짐칸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

아빠는 그대로 집까지 실려와 문짝이 부서진 자기 방에 부려졌다.

 

김영하 소설집/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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