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인호의 에세이라서 집어들었다.
작가 자신이 원래 도시 사람이지만 원래 산중인인거 같다고 쓴 대목에선 동의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누구든 젊었을 적에 산중인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이가 드니까 산을 찾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젊을 적부터 도시가 싫고 산이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4,50이상이 되어서야 산의 참맛을 알게 되는것 같다.
아마도 작가도 이제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화류항의 도시 내음이 좋을 시절은 지나고 이젠 고요한 산중의 맛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일 것이다.
작가가 영화감독도 했었는데 그때는 젊은 혈기방장해서 무엇에든 뛰어들고 싶었던 세대였을것이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 삶을 관조하는 시대이니까. 그렇지 않을까 싶다.
최인호작가가 영화감독을 하자 한 어르신은 '장난감가지고 놀다가 이제 싫증이 나니까 다른 장난감을 찾은 아이'에 비유한 적이 있었다.
공연히 작가의 고집스런 면이 드러난 것 같았다.
그리고 샘터에 연재된 가족을 볼때도 그렇지만, 중간에
그렇다.
라는 말이 여기서도 습관적으로 나오는 게 조금은 눈에 거슬린다.
-.아버지의 젖꼭지를 몰래 빨아 보던 부끄러운 기억과,
아버지가 시키던 담배 심부름을 도맡아 했던 짧은 기억들,아버지와 '톰소여의 모험'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상해서 쳐다보니 울고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만이 남아있다.
<'가정'이라는 '수도원'에서의 수양>
밖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은 드물다.
밖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아내로부터 인정을 받는 남편은 드물다.
서로 모르는 타인끼리 만나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과 더불어 온전한 인격 속에서
한 점의 거짓도 없이 서로서로의 약속을 신성하게 받아들이고, 손과 발이 닳을 때까지
노동으로 밥을 벌어먹으면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다가,마치 하나의 낡은 의복이
불에 타 사라지듯이 감사하는 생활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가족이라면,
그들은 이미 가족이 아니라 하나의 성인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이야말로 하나의 엄격한 수도원인 셈이다.
그 가정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은 이미 종신서원을 약속한 수도자들인 것이다.
가족이라는 수도원에서 우리는 일상을 공유하며 사랑을 수양하고 있다.
-.이 할머니는 내게 신문 한장을 내밀었는데 놀랍게도
내 단편 소설인 <연가>를 폴란드어로 번역했다는 것이었다.
<연가>라면 1970년대 중반에 쓴 단편소설.
그 소설이 어떻게 폴란드까지 흘러 들어가 이 푸른 눈의 할머니의 눈에 띄어
폴란드어로 번역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전 세계에서 창작 뮤지컬을 공연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 두 나라뿐이다.
자본과 기술에서 세계를 리드해 나가는 일본 에서도 외국 작품을 들여다가 학예회 하는 수준에만 머물러 이을 만큼 창작 뮤지컬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막상 오페라극장에 가서 <겨울 나그네>를 본 순간 나는 솔직히 가슴이 떨렸다.
-.몇년 전까지 산속에 가거나 외딴 곳에 가면 심심해서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거나 하다못해 고스톱 판을 벌이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었다.
사람들이 들끓고 지하철이 달리고 여인들의 화장품 냄새가 풍겨오는 화류항의 도시가 내 체질에 맞는 곳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어이 된 일인가.수덕사에 찾아가니 그곳이 이제 내 고향인 것만 같았다. 나이가 더 들면 방장 스님에게 작은 암자 하나를 달라고 떼를 쓸 결심까지 했을 정도로,
그 암자에서 자고 먹고 머물면서 글을 쓰고 싶었다.
선종에서 내려오는 오래된 노래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본디 산에 사는 사람이라
산중 이야기를 즐겨 나눈다.
5월에 부는 솔바람 팔고 싶으나
그대들 값 모를까 그게 두렵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면서도 걸핏하면 점 집을 드나들던 큰 누이는
아내와 결혼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하자 그길로 관철동 어딘가에 있는 유명한 접집에 갔다 왔다.
"신랑 집에서 오셨습니까.신부 집에서 오셨습니까?"
"신랑 집에서 왔습니다."
누이가 대답하자, 그 점쟁이가 이렇게 말했단다.
"그럼 신랑이 땡 잡았습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빨리 장가를 보내십쇼.
이건 완전히 신부 집에서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가 막막하다.
하루하루가 건너지 못할 사막처럼 느껴진다.
가톨릭에서는 이따금 영적 메마름이라고 해서
이런 모래알과 같은 고통의 고독이 찾아오는 것을 인정하고
오히려 이런 메마름을 더 큰 영적 성장의밑거름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나처럼 영적으로 유치한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그저 하나의 증상일 뿐이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 말고는 단 하나의 친구 조차 존재하지 않는 유아독존의 괴로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나에게 있어 나는 누구인가?
-.컴맹인 나에게 이어령 선생님은 컴퓨터를 사용하라고 간곡하게 명령을 내리곤 한다.
그러나 나는 컴퓨터를 싫어한다. 최근에 나는 몇 번 문학상 심사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거의 100%의 작품이
이른바 컴퓨터 소설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키도 작고 왜소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이 열등의식은 최고조에 달했다.
아마 그때 내가 그 열등의식을 극복해 내지 못하였다면 지금쯤 나는 극심한 자폐증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모두가 저마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이 사회는 원하지 않고 자본주의 경제의 거대한 메커니즘 속에서
우리는 모두 부품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하느라 삶을 조금씩 망각하고 있다.
나는요즘 내 집을 산속에 틀어박힌 절처럼 이 사회의 망망대해에 고립된 섬으로 만들어놓고
그곳에 칩거하며 느림과 무사의 철학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에서 나는 모든 이들을 만나러 조용히 내 삶의 순간들을 더듬어 가고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이 곧 나의 일이라는 경허의 일갈이 내 귓전을 때린다.
<산중일기/글.최인호 사진 백종하./램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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