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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사색상자(이외수)

  

책 속에 실려 있는 이외수의 예쁜 그림들.

 

  

 

 

 

  

 이외수의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에서

 

-.자판을 두드릴때 마다 글자들이 모니터에 파종된다. 컴퓨터라는 파종기는 냉정하다.자판을 두드린다고 자판을 두드리면 두드린다는 글자들이 파종된다.

그러나 파종된 글자들의 모두 발아하지는 않는다. 나중에 점검해 보면 대부분이 사어들이다. 더러 싹이 돋아난 생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재배가 수월한 것이 아니다.

 

-.아직도 그대를 잊지 못했음.

이라고 누군가에게 짤막한 교신이라도 보내고 싶은 날입니다.

하지만 지난 날 내 곁을 떠나가버린 모든 이들의 주소는

이미 오래 전에 망실되고 말았습니다.

가을날 그리움의 거처는 바람의 거처와 동일합니다.

 

-.현미경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역시 세상 만물이 모두 아름답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해캄 아메바 짚신벌레 대장균 종벌레 플랑크톤 그밖에 이름을 아직 알아내지 못한 여러가지 생명체들이 나름대로 바쁘게들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도 정치가들이 있는 지 거기도 장사꾼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많다는 사실만은 확실합니다.

 

-.곤충들에게는

자신의 몸이 각질로 화해서 고립되는

번데기의 과정이 가장 고통스럽지요.

그러나 번데기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무시형 곤충들은

날개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날개를 가진 벼룩이나

날개를 가진 빈대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날개가 없는 무시형 곤충들은 대개

다른 동물들이  힘들게 마련한 먹이를 훔치거나

약한 돌물을 집단으로 공격하거나

다른 동물들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도 고통을 모르고 자란 사람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초등학교 때 일기를 안 쓰면 회초리를 드는 선생님이 계셨다.

내 일기는 날마다 짤막하게 쓰여질 수 밖에 없었다. 담임 선생이 가장 싫어하는 형태였다.

다른 아이들이 그런 식으로 일기를 쓰면 어김없이 회초리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런나 나만은 예외였다.

담임 선생은 내 일기를 건성으로 훑어보고는 슬그머니 다음 자리로 옮겨가기 일쑤였다.

나는 어리석게도 날마다 운이 좋아서 회초리를 모면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절대로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일기를 대충은 기억해 낼 수 있다.

 

학교서 도라와 할머니하고 동양(냥)어더서 밥묵고 숙제하고 밤이 와서 아버지가 보고시퍼슴니다. 끝.

 

-.어느해 여름 천상병 선생님이 우리 집에 놀러 오셨을때 물었습�다.

"선생님을 전기고문 했던 사람들을 거리에서 만나시면 아직도 알아볼 수 있으신가요?"

"있지, 있지. 있지."

"만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요놈. 요놈. 요 이쁜 놈이라고 말해 주지." <이외수의 사색상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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