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일지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홍은택지음 /한겨레 출판

 

- 여행이 좋은 것은 그 숱한 과정을 통해서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낼 뿐 아니라 필요한 것들의 숫자를 줄인다는 점이다.

여행을 하면 질박한 삶을 배운다. 그런데 그 작업은 잃어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의식적으로 버리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가족은 경험을 공유하면서 낯선 곳들을 익숙한 곳으로 개간한다.

 

-.한국인의 이민 경로가 이제는 모세 혈관처럼 세밀해지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미국 가정의 자녀들은 고교를 졸업하면 재정적으로 독립할 것을 요구 받는다.

 

-.잉겔스는 유럽에서 고향인 캘리포니아주로 돌아와 계속 모터사이클 경주를 했는데 점점 마약에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점점 더 투약량을 늘려야 하듯 아무리 우승을 해도 만족스럽지 않고, 그 다음 날에는 다음 대회에서 또 우승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는 것.

일주일에 네 번은 열리는 대회를 그는 열여덟번 연속해서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열아홉번 째 대회에서 일등으로 들어오지 못하자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서 손에 집히는 대로 집어던졌다. 그때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은퇴를 결심했다는 것.  그래서 모터사이클 선수를 그만두고 목수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빗발치는 번개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은 불량배한테 뺨을 내밀며 쳐봐,쳐봐 하는 것과 같다.

 

-.먼저 떠난 엘리슨의 냉장고에 붙여 있었던 쪽지를 읽으면서 그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와 만날 기회가 없다고 해도 그리 섭섭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얘기를 나눈 듯한 느낌이다.

맘에 와 닿는 구절은 '굴복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이라는 대목이다 .

우리는 생각이 다르면 원수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생각이 좁아지고 더욱 말을 나눌 사람이 적어진다.

때로는 그게 싫어서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상상의 것으로 스스로 괴롭히지 말라는 말도 내게는 적절한 충고였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여행에만 충실하자.

 

-.여행은 매일 이름모를 항구에 도착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세우고 낯선 거리를 걸으면 오랜 항해 끝에 부두에 내린 선원이 된 듯하다.

선원은 정복자가 아니라 마을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이방인이다.

내일이면 떠날 나그네라는 점에서 아무런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다는 점에서 호기심만으로 세상을 본다는 점에서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다.

 

-.나이가 들면 되새길 추억만으로도 짐스러운 판인데...

 

-.철조망의 발견이 소 떼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봉쇄함에 따라 카우보이들은 일자리를 잃고 낭만적 의미도 상실했으며 끝내 로데오 선수로 변신했다.

다른 측면에서 철조망으로 인건비가 크게 절약됐다. 하루 아침에 방목권을 상실한 사람들과 철조망으로 사유재산권을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잇따랐고,캔자스는 울타리법을 제정해 분쟁을 조정해야 했다.

 

-.교도서를 짓는 속도가 사람 가두는 속도를 못 쫓아가 교도소도 빌려야 할 판이다.

민간업자는 마치 여관방처럼 감방을 내주고 돈을 번다고 한다. 희한한 사회다.

 

-.배를 좋아하는 질리언은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에 배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 고장 나면 일단 배를 수리할 줄 알아야 하지만,궁극적으로 마지막 해결책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교도관으로 생활하는 질리언은 날마다 수인들과 생활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바이크 라이더들을 집에 초대하고 있다.

그는 바이크 라이더들은 하나같이 다 좋은 사람들이어서 그들과 하루라도 생활을 같이하면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원래 들소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의식주였다.

들소 가죽으로 천막집인 티피와 옷을 짓고 뼈로 도구를 만들었다.

특히 농토가 전혀 없던 이 일대에 살던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 우테에게 들소는 밥줄이었다.

함부로 잡지 않았다. 그러니 백인들은 인디언들을 직접 죽일 필요가 없었다. 총으로 들소를 마구잡이로 도살하면서 인디언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람의 원천을 없애버렸다. 지금은 들소를 키우면 나라에서 보조금을 준다고 한다. 이건 병주고 약주고도 아니고..........

 

-.나는 실존주의자들처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날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다.

오늘이 최상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점점 더 좋은 날로 가는 도중의 하루라는 뜻이다.

오늘이 남은 생애의 첫 날이라는 말도 맞다. 하지만 그것은 왠지 과거를 지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미래에 대해 갖는 부질없는 희망처럼 들린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그것들은 더 나은 날들을 위해 바닥에 깔리고 모여지는 것이다. 나는 바퀴를 굴리면서 내 몸의 가능성이 쉬지않고 이뤄지고 펼쳐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산불은 나무를 태워 쓰러뜨리기도 하지만,동시에 땅에 흩어져 있는 솔방울 모양의 씨 주머니를 터뜨려 씨를 퍼뜨린다.

로지폴이라는 소나무가 그렇다. 이 나무의 씨는 솔방울 속에 보통 5,60년 길게는 150년 동안 갇혀 있다가 산불이 씨주머니의 외피를 터뜨려주면 세상 밖으로 나와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나무로 성장하기 전까지 내게는 영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견디는 참을성이 오묘하다.

 

-.마리화나를 피운 론은 찬물을 뒤집어쓰고 깨어난 것 같은 표정이 됐다. 깨어나긴 했는데 다른 세상에 깨어난 것 같다. 더 이성을 잃어갔다.

 

-.해질무렵의 근사한 저녁이었다.

나는 술 욕심이 나서 거의 반 병 이상을 내가 마셨다. 그러고는 취기로 숨이 가빠져서 텐트 안에 눕자 스스로가 못마땅해졌다.

기껏 여행으로 맛난 음식과 좋은 술에 대한 갈망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닌가. 내핍을 통해서 고작 배우는 게 풍요로운 소비에 대한 향수인가.

그렇다면 나는 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거다. 그럼 안되지.앞으로는 주는 대로 다 받아먹지 말자.

 

-.끝에 이를수록 더 끝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인류의 역사도 언젠가는 저 한 층,겨우 10미터도 안 돼 보이는 지층 하나로 압축되지 않을까.

이 화석들을 보면 인류가 영속하리라고 믿기보다는 지각 변동으로 보론도세레스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하는게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그것을 최후의 심판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또는 자연적 순리로 받아들여야 할지....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의 의미를 묻게 된다.

 우주의 단위로 보면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도 기삿거리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이제 딱 달라붙어 있어서 떨어지지 않는 누룽지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때다.(마지막 문장이 멋지다.)

 

#읽는 내내 자전거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일단은 집에서 일산까지 가보고 그러면 다시 안성까지 가보자고 아들과 이야기 했는데 안성까지가는건 집사람 생각에는 위험해서 안된단다.

 

'독서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절한 복희씨  (0) 2008.07.09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0) 2008.07.08
친절한 복희씨  (0) 2008.07.02
독서 소화불량  (0) 2008.03.12
삶이란  (0) 2008.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