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소화불량
도심 대형서점을 찾아간 내 눈에 비친 사람들 모습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은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대각선으로 훑어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간과 돈을 아끼려는 듯 속독을 통해 한 권의 책 내용을 순식간에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것처럼 보인다.
얇은 소설책 한 권도 10여일 정도를 읽고 또 읽고 암송하며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그들의 신속함에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저렇게 읽고서 과연 저 책을 쓴 작가의 사상과 인생의 깊이를 얼마나 파악할 수 있을까?’하고 의아해 하기도 한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저자가 들인 시간과 노력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쓰는 이와 읽는 이, 또는 쓰는 이와 보는 이 사이의 엄청난 격차를 느껴 씁쓰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음미하는 대신 순식간에 삼켜버려 결국 체증을 부르고야 마는 이 조급증은 서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사들고 나와 들어간 식당의 여주인은 나를 식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테이블 앞에 안내라고는 ‘이 분들 다 드셨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했다.
식사하던 손님들은 갑자기 서두르기 시작하더니 미처 다 먹지 못하고 나갔다. 황급히 물러 난 사람의 자리에 미안한 마음으로 앉으며 생각했다. ‘이건 식사를 느끼고, 음미하는 풍요의 차원이 아니다. 마치 책을 대각선으로 훑어내는 사람처럼 뱃속에 억지로 음식을 밀어 넣는 ’주입‘의 차원이다.
음식을 미처 다 삼키지 못한 내 앞에도 어김없이 또 다름 일행이 나를 노려보고 서있었다.
나도 책을 담은 봉지를 들고 쫓기듯 일어났다. 그날 밤 책을 읽으며 난 여지없이 체하고 말았다.<김태수.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