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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효재처럼'에서

 

*.남편과 혼인신고를 하고

막 돌아서면서 인감 도장을 떨어뜨려서 두 동강이 났다.

불길한 생각이 나기도 할 수도 있지만 매사 생각하기 나름.

'혼인 신고는 한 번만 하고 말라는 뜻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마당의 정화조도 가리고,수도 배관도 가리고,

스위치며 콘센트도 수 놓은 액자나 광목으로 가려놓아

웬만한 눈썰미와 호기심이 없으면 찾기 어렵다.

어떤 사람은"수 없이 이곳을 드나들었는데도 멋진 그림 액자인 줄만 알았지

그 속에 스위치가 숨겨져 있는 줄은 몰랐다 한다. 

노트북이며 팩스, 전화기, 전기 포트 화장실에 있는 샴푸와 린스까지

이 집에 어울리지 않는 현대적인 물건들은 모두 수 놓은 수건, 대바구니, 조각보, 심지어 항아리까지 동원해서

모두 가리고 감춰두곤 한다. 하지만, 이런 원칙 또한 고수한다.

집에 아무리 보기싫은 것이 있더라도 함부로 뜯어내거나 없애지 않기.


*.꿈자리 뒤숭숭하고 밖에서

하루 종일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날, 냉장고를 열면 냉한 기운이 마음까지 시리다.

냉기 쏟아지는 냉장고 문을 열고 서러운 맘 달래며 잠깐 서 있다가

“나는 고구려 여인이야”하면서 예쁜 공주님 밥그릇에 뜨거운 밥 한 그릇을 담는다.

“지금부터 잘 먹고 잘 살아야지.” 한마디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다.

참담하거나 쓸쓸한 날 텅 빈 집에 혼자 남겨졌을 때, 그럴 때 일수록 화려한 그릇에 밥을 먹는다.

그래서 화려한 밥그릇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법, 여자들은 밥 먹다가 전화 받는 일이 많은데,

먹다 남은 밥상을 보면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 순간을 대비해서  그릇하나도 특별한 것을 써야 한다. 산속의 가을은 유독 쓸쓸하다.

눈에 들어오는 것도 집 앞 억새풀뿐인 심란한 어느  날에는 깊이 넣어두었던 예쁜 그릇 꺼내 나 혼자 잔치를 벌인다.

[이효재 지음-<효재처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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