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돔 앞에서 설명을 듣는 서양 단체 관광객들이 많은데 대부분 70대 이상으로 보였다.
아마도 원폭이 투하된 곳이라는 상징성에 일본의 평화 마케팅이 주효한 이유일 것이다.
아버지가 1923년 생이시니 지금 살아계시다면 100세이시다.
오남매들과 궁금해서 카톡을 주고 받다보니 아버지가 징용 간 것이 첫 딸을 막 낳은 20대 초반의 신혼 때였던 것이다.
일본으로 끌고 갈 사람들을 모으는 일을 했던 할아버지의 친구분은 친구의 아들인 내 아버지도 명단에 넣었다.
갖은 감언이설로 꼬였던 것인데 막상 히로시마에 도착해 보니 모두가 거짓이었다고 게다가 원폭이 투하되었으니....
아무리 아버지 친구라 하더라도 내가 돌아가면 절대 가만 두지 않으리라고 벼르고 벼르셨다고 한다.
종전이 되어 비교적 안전하고 편하게 올 수도 있었는데 원폭이 투하되고 나서 너무 무서운 나머지 동료와
밀항하다시피 부산으로 도망하듯 작은 배를 타고 건너 오신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날 봐서라도 참으라고 하셔서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였는데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게다가 얼마 후 6.25 전쟁이 터졌으니 그 지옥같은 피난 속에 아들 딸 셋을 모두 가슴에 묻으신 것이다.
어떤 시골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지난 곳도 있었다고 하는데 내 부모님들은
그야말로 전쟁의 한복판을 오르내리며 지옥을 체험하신 것이다.
아버지가 징용가셨던 댓가를 조금이라도 보상 받았다면 그 이후의 삶이 조금은 편하셨을까?
북에서 피난 내려와서 아무것도 없는 맨몸으로 시작한 도시 하층민의 삶은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는 것도 힘든 그런 삶이었다.
그런 모진 삶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오남매를 키우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린 첫 딸을 낳은지 얼마되지 않은 신혼때 히로시마에 간 것이나 6.25 전쟁을 겪은 것에 비하면,
삼시세끼 굶지않고 넉넉하게 연탄이 쌓여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도쿄돔 -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은 이 도쿄돔에서 600m정도 떨어진 곳이었다고 한다.
체코의 건축가가 얀 레첼이 설계한 이 건물은 1915년에 세워졌는데
히로시마 물산 진열관, 산업 자원관 등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전후에 철거를 하느냐 마느냐로 많은 토의 끝에,
남겨서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자 하였단다.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자 내부의 벽에 철골을 대고 있었고 현재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외부의 모습은 당시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는 훼손을 막기 위해 꽤 많이 손을 본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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