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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기가 천재 아닐까?

 엄마들은 누구나 "내 아기가 천재 아닐까?" 뜨겁게 고민하는 시기를 보낸다.

엄마 눈에는 아기의 모든 것이 특별해 보인다. 아기의 특별함이 아니라 엄마가 자신을 특별하다고 여기는 나르시시즘이 아기에게 투사된 감정이라는 사실은 잘 인식되지 않는다. 아기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된 후에도 아기에게 투사된 엄마의 나르시시즘은 포기되지 않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자녀를 특별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 다양한 조기교육을 하고, 수많은 학원을 돌게 하고, 조기 유학을 보내기도 한다. 특별한 재능이 보인다 싶으면 그 분야의 대가에게 데리고 가서 검증 받는다.

그 과정에서 자녀의 욕구는 고려되지 않는다. 자식이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특별한 사람의 부모가 되고 싶어하는 엄마의 욕구만이 빛날 뿐이다.

 

자녀의 모든 것을 자기 기준으로 통제하는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녀의 친구, 대학, 학과 등을 자신이 결정한다. 물론 자녀의 배우자도 직접 검증한다.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이 자기 배우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뜻대로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놓은 나르시시트 부모는 이제 보상을 요구한다.

 

직장 생활을 시작했으니 부모에게 용돈도 보내주고, 매일 안부 전화도 하고, 부모가 원할 때면 언제나 시간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에게 직장과 가정의 모든 과정이 장애물 경주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을 공감할 줄 모른다. 왜 안부 전화를 빠뜨렸느냐고, 왜 생일을 잊었느냐고 자녀를 채근하고, 자녀들은 어린 시절 습관처럼 부모를 기쁘게 해주려 애쓴다.   (중략)

 

  문제는 정서적 도덕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나르시시트들이 힘을 가졌을 때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리더는 공동체 구성원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 그들은 자기 가치만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타인과 소통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아랫사람들을 키워줄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 오직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자기 이익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사용한다. 타인을 착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성공이나 특별함의 증거라고 믿는다. 자신의 잘못이나 약점이 드러났을 때는 겸허하게 인정하기 보다는 끝까지 부정하는 쪽을 택한다. 그들에게 겸손함이란 약자가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생존법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경험 / 김형경 /사람풍경>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