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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연필로 쓰기

일상의 자잘한 일들도 김훈의 연필의 힘이 작용하면 펄펄 살아 있는 언어로 다가온다.

평범한 남녀 노인들의 잡담 속에도 우리 인생의 통찰을 발견하기도 한다.

김훈이 언젠가 내 힘으로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움직이며 쓴 산문처럼, 이 책도 노트북이 아닌 내 손으로

연필을 잡고 쓴, 몸으로 겪고 몸으로 쓴 김훈의 글이라 울림이 다르다.

 

애써 개고기를 먹고 있음을 숨기려 하지 않고 교양있는 척 하는 개 키우는 사람들을 꼬집기도 한다.

여성 노인과 남성 노인들이라 지칭하면서 얻어들은 수다도 미소를 머금게 하는데 특히 아랫것들로 지칭하면서

뒷담화하는 노인들의 이야기는 한편의 개그프로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똥 이야기는 동화 '강아지똥'에 비해 조금은 꺼림찍 하기도 해서 찌푸리고 읽기도 했다.

 

묵직한 이순신 이야기와 더불어 세월호 관련 이야기는 가슴을 울리기도 하는데 김훈 자신은

여론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의 글 곳곳에서는 보수적이기보다는

진보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늘그막에 글을 배워 시를 쓰는 할매들 이야기도 꽤 의미있게 보았다.

나도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을 때 글을 배운 사람과 생애의 신산을 모두 겪고나서 문자를 배운 사람과의 차이를

생각해 보았다. 변비가 있던 사람이 약을 먹고 변을 콸콸 쏟아내듯 쏟아내고 싶었던 것이 글로 살아서 펄펄 뛰는 것 같다.

 

김훈이 서태지의 음악이 김훈의 마음 속에 내려 앉지 않듯, 나는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되돌아보면 원더걸스까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읽으며 내 생각을 함께 하며

한여름 더위를 떨쳐 내기에 좋은 책이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돈암동 언저리에서 작가도 보냈다는 사실이 더욱 작가에게 호감을 갖게 만들었다. 

 

지금 일산에 살고 있는 김훈은 호수공원을 산책하며 보고 생각한 내용들도 들어 있다.

내가 아는 지인이 호수공원 산책하다가 저자를 만난 이야기를 한 적도 있는데

일산에 사는 사람들은 공감하는 내용도 더 많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연필로 쓰기 / 김훈 / 문학동네>

 

 

-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편견과 편애, 소망과 분노, 슬픔과 분노에 당당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헐겁고 어수선해도 무방하다.

나는 나의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말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출간으로 , 나의 적막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전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 이제, 호수공원의 연꽃은 모두 시들었다. 여름에 빛나던 꽃일수록, 가을에는 더 참혹하게 무너지낟. 연잎은 누렇게 시들고 걸레처럼 썩어서 물에 떨어지고, 줄기는 모두 목이 부러져서 꺾인다. 수면에는 연꽃의 잔해로 누런 폐허가 펼쳐진다.

 

- 이야기는 결론이 없었지만, 이야기 자체의 신명에 이끌렸고 어조에 리듬이 붙었다. 수다는 한이 없었고, 결론은 없었다.

 늙은 여성들이 젊은이들을 못마땅하게 말할 때는 '요샛것들'이라는 삼인칭 복수대명사를 쓴다. 내가 분석해보니까, '요샛것들'이란 주로 며느리들을 가리키는데, 이 며느리는 자신의 며느리일 수도 있고, '요새' 며느리들을 싸잡아서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며느리라는 집단을 흉볼 때는, 한 명이 말하면 봇물 터지듯이 다들 따라한다.

 

- 요즘은 개의 지위가 높아져서, 개를 개라고 하면 무식쟁이 취급을 받고, 반려견이라고 해야 교양인 대접을 받는다. 

 

- 날이 저물고 밤이 오듯이, 구름이 모이고 비가 오듯이, 바람이 불고 잎이 지듯이 죽음은 자연현상이라서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그런 보편적 운명의 질서가 개별적 죽음을 위로할 수 없다. 문상 온 친구들이 그렇게 고스톱 치고 흰소리해대는 것도 그 위로할 수 없는 운명을 외면하려는 몸짓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문상의 자리에서 마구 떠들어대던 친구들의 소란을 나는 미워하지 않는다.

 

- 이순신이 남긴 기록에 의지해서 그의 지도력이 작동하는 모습을 헤아리건대, 그는 우선 이 모든 악조건과 그의 정치적 불운을 모두 '사실'로 긍정하고 있다. '사실'에 정서를 이입시키지 않고 '사실'을 오직 '사실'로서 수용하는 태도는 그의 리더십에 한 중요한 본질을 이루는 듯하다.

 

- 이념의 폭력에 개인의 육성으로 항거했던 소년 이승복의 형상을 아이콘으로 만들어가면서, 그 반대쪽에서 법령과 제도와 공조직을 동원해서 또 다른 국가폭력을 자행해온 세월이 당신들과 내가 살아온 시대이다. 그 세월의 야만과 오욕,퇴행과 저항들이 모두 모여서 오늘의 현실과 역사의 내용을 이룬다. 영광과 자존만으로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통과해온 한국 현대사는 성취와 자랑만이 아니라 반성과 고백의 기조 위에서 쓰여야 한다. 

 

-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80달러 정도였다. 한국은 세계 최빈국이었고 필리핀의 원조를 받았다. 지금은 3만달러를 넘어섰다. 가난했던 시절에 한국 사람들은 나라가 잘 살게 되고 국민소득이 늘어나면 빈곤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소득이 늘어나자 빈곤은 구조화되었고 구조적 빈곤은 토착되고 세습되어간다. 가난은 다만 물질적 결핍이 아니다. 빈곤은 그 결핍을 포함한 소외, 차별,박탈, 멸시이다. 이 구조는 이제 일상화되어서 아무도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시장의 원리이며 시장의 자율적 기능이 작동하는 결과라고 설명하는 말들은 힘이 세다. 나는 그야말로 백면서생이어서 소득분배나 경제발전 방향 같은 거대담론을 입에 담지 못하지만, 내가 보고 겪은 것들을 겨우 말할 수는 있다.

 

- 나는 리듬이 빠른 음악을 들어도 몸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늙어서 그렇다기보다는 몸과 마음 사이에 직접성이 빈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 박정희 소장이 한강을 건너올 때 비틀스가 따라왔다. 나는 한국 현대사에서 이 사태가 가장 난해하고 통쾌하다. 이것을 역사의 섭리라고 해도 좋을는지, 노래는 섭리다.

 

- 그들은 곡식이건 채소건 짐승이건 사람의 자식이건, 자라는 것들을 먹이고 가꾸고 거두어서 키울 줄 알았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아름답고 정당함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멀리서 온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그들의 앎은 지가 아니라 득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그 앎은 한 생애를 통해서 실천되고 있었다.

 

- 나는 내 생애에 별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을 때 글자를 배웠다. 아마도 조선조의 모든 글 읽는 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산간마을의 할매들은 한 생애의 신산을 모두 겪고나서 문자를 배웠다. 나는 이 차이가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잘 설명하지는 못한다. 대충 말하자면 할매들의 글에는 문자가 인간에게 주는 환상이 없고, 인간의 문자와 문장 안에 이미 들어와서 완강하게 자리잡은 관념이나 추상이 들어 있지 않다. 할매들의 글은 삶을 뒤따라 가면서 추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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