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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마음의 부력

2020년에 초유의 이상문학상 거부사태로 이상문학상 수상작품과 상에 대해  관심이 멀어졌었다.

그러다가 그래도... 하는 마음에 집어들고 보게 된 수상작 '마음의 부력'. 비가 오고나면 땅이 굳듯,

그래서인지 2021 당선작인 이승우의 '마음의 부력'은 꽤 탄탄하고 독후에도 잔잔한 울림을 주는 소설이다.

 

등장인물 중 화자인 주인공 부부와 어머니, 그리고 돌아가신 형까지 단촐하고 내용도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인물들의 내면 묘사가 뛰어나고 섬세하다. 주인공인 둘째 아들은 공무원이다. 대학이나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형은 얽매이는 걸 싫어하고 하기 싫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 들어간 대학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두 번이나 학교를 옮기고도 졸업을 못한다. 광고회사, 대형 서점, 영화사, 커피점, 이삿짐 센터, 백화점 경비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어느날 형이 카페를 차리고 싶다며 어머니께 도움을 청하지만 동생의 대학원 등록금 마련으로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고 이후 형은 빚독촉에 시달리고 어느날 사고로 죽는다.

 

그 일이 시간이 지나 어머니 마음 속의 짐이되어 마음 속에 남아 있지만 치매에 의해 부력으로 떠오른다.

아무도 어머니가 마음의 큰 짐으로 생각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치매의 증상으로 인해 어머니는 형과 동생을 착각하기도 하고 아직도 형이 살아있어 형의 카페 차릴 돈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부력을 받아 떠오른 것이다.

 

둘째 아들인 주인공 성식에게도 형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같다.

항상 형과 비교되어 동생 성식은 세속적인 성공을 거둔 자로, 형은 실패한 자로 세상은 규정하며 이야기 한다.

어머니와 세상의 편애의 대상이 된 주인공의 마음을 작가는 아주 섬세한 필체로 이야기 하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다.

 

"편애의 대상이 된 사람이 느끼는 마음의 불편함을 사람들은 간과한다.

그들은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에서 제외된 사람의 아픔에 주목할 뿐, 주목하느라,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의 대상이 되어 있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는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이 사랑의 실행에 전적으로 수동적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치우친 사랑에서 제외된 자만이 아니라 그 사랑의 선택을 받은 자 역시 비자발적이다. "

 

 창세기에 나오는 리브가는 큰아들 에서 보다 야곱을 더 사랑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빌어 주인공과 형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갖는 불편함 뿐 아니라, 사랑받은 사람도 충분히 불편할 수 있음을......

 

그런 상황 속이지만 형제간의 우애는 좋은 편이고 형이 "너라도 어머니 마음 구겨지지 않게 해서 다행이다만..."라고 한 말 속에서 형의 마음이 전부 다 들어 있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그런 죽은 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어머니의 마음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마음의 부력 /이승우/문학사상>

 

- 서둘러 마무리 지으려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내가 주장이 아니라 하소연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그러나 내 뜻이 받아들여졌다는 만족감은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어딘가 찜찜하고 불편했다. 그 이유가 내 말이 주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하소연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른 체하기가 어려웠다.

 

- 자격지심이 분명할 테지만, 추궁을 넘어 취조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아내의 눈빛이 너무 억울애서 나는, 도대체 어머니가 뭐라고 했길래 그러는지 들어나 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상상하지 못한 경로를 통해 마음이 시끄러워질지 모른다는 애초의 염려가 현실이 되는 것 같아서 신경이 곧두섰다.

 

- 나는 오해를 잘 견디는 사람이 아니었다.

 

- 아내는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쳐다보는 것으로 내 행동을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 형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장례를 치른 후에도 믿어지지 않아서 가끔 전화를 걸다가 화들짝 놀라 끊곤 했다. 형이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게 아니었는데도, 어머니를 뵈러 가면 집 안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받곤했다. 문득 찾아오는 예사로운 침묵이 자칫 유다른 감상을 블러낼까 봐 어머니 앞에서는 아무 말이나 주절거리는 일이 잦았다. 

 

- 어떤 말을 해도 마음이 전달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어떤 말을 하지도 못했다.

 

- 깨기 직전의 꿈 속 장면이 덩달아 일어나 머리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 생각은 내쫓지 못했다.

 

- 서둘러 작별인사를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지고 말았다.

 

- 나는 어머니가 내 목소리는 확실히 알아듣는데 형의 목소리는 그저리 못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형의 목소리는 나를 닮았지만 내 목소리는 형의 목소리를 닮지 않았다는 식으로 애매하고 흐리멍텅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아내가 지적할 때까지 나는 이런 생각이 이상하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 그 말 속에 숨어 있는 발톱을 보고 싶지 않아서라고 할 수도 있었다. 내 속에서 어렴풋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생각들을 말로 옮길 수는 없었다.

 

-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내가 형에게 돌아갈 몫을 부당하게 차지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자신을 외면하지 못했다. 의도와 상관없이 혜택을 더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편애의 대상이었음ㄴ을 인정해야 하므로 위험했고, 그리서 회피해야 했다. 편애의 대상이 된 사람이 느끼는 마음의 불편함을 사람들은 간과한다. 그들은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에서 제외된 사람의 아픔에 주목할 뿐, 주목하느라,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의 대상이 되어 있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는 헤하리려 하지 않는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이 사랑의 실행에 전적으로 수동적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치우친 사랑에서 제외된 자만이 아니라 그 사랑의 선택을 받은 자 역시 비자발적이다. 

 

-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어머니의 편애를 받았던 창세기의 인물 야곱이 느꼈을 마음의 짐에 대해 아내에게 이야기 했다. 

 

-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행위와 같은 것이 된다. 이긴 사람이 호명이 되면 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된ㄴ 것과 같은 이치다. 

 

- 기울인 수고에 맞는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것을 누구 탓이라고 해야 할까. 애쓰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애쓴 것이 반드시 이뤄지는 것도 아니라는 세상의 이치를 형이 몰랐을 것 같지 않다. 

 

- 전혀 칭찬 받을 일이 아닌데도 칭찬을 늘어놓는 것은 형만이 아니라 삶을 망신 주는 것이고, 내 마음까지 할퀸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 숙달이 되기도 하지만 타성에 젖기도 합니다.

 

- 소설가가 자기가 한 일로 상을 받는 것은, 규칙과 반복이 지배하는 '사무원'의 사무실로 갑자기 낯선 손님들이 찾아오는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부르지 않았는데 찾아온 이 손님들은 반복되는 일에 지쳤거나 혹은 타성에 젖은 '사무원'의 정신을 휘젓고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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