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달리나 피카소가 그때 이미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견고하게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설명할 수 없는 무력감이 찾아들었다. 어떤 이들은 태어날때부터 부모의 관심과 지원 아래 이세계를 마음껏 표현하며 불멸의 이름으로 살다가고, 나의 아버지같은 이들은 한국의 남쪽 J읍에서도 시골쪽으로 한참 들어가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농가에서 태어나 학교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한 채 생존이 아닌 다른 이유로는 그 집을 떠나본 적이 없는 흙먼지 같은 일생을 살기도 하는 게 인간의 삶이기도 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때 어린 딸에게 외면당하기도 하면서.
- 어떤 곳은 누렇게 얼룩이 져서 글씨가 뭉개져 있기도 하고 물방울을 떨어뜨렸다가 손으로 쓸어낸 것처럼 사인펜 자국이 저 위까지 흐르듯 번져 있기도 했다. 물방울?
아.....나는 무릎이 꿇려지는 기분이 되었다. 이 편지를 읽으며 아버지가 흘린 눈물방울이 번진 자국이란 생각이 들어서.
- 아버지가 고백처럼 젊은 날에 우리들의 먹성이 무서웠다고 한 말은 내겐 충격이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아버지의 소년 시절을, 아버지의 청년 시절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염병으로 이틀 사이에 부모를 잃은 마음을, 전쟁을 겪었을 때의 마음을, 얼굴 한번 보고 엄마와 결혼하던 때의 마음을, 큰오빠가 태어났을 때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나를. 짐작이 되지 않았다. 형들을 잃고 종가의 장손이 되어 여태 살아온 아버지의 젊은 날들 또한 떠올리려 노력해봤으나 어려웠다. 어린 시절의 사진 한장 남아 있지 않은 게 아버지가 살아온 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뿐. 내가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고모의 말이나 엄마의 말 속에 깃든 아버지일 뿐이라는 것도.
- 형은 어떤 상황에서도 잘 못되면 안된다는 압박을 받았을 거 아니냐. 집안의 맏이가 곧아야 동생들도 곧게 자란다는 말을 형은 내가 태어난 뒤부터 계속 들었을 거 아니냐고. 너가 잘못되면 동생들도 잘못된다는 말을 막내가 태어나고 적어도 스무살이 될 때까지 들었을 걸 생각하니 형이 안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 나는 집 문패 주소 옆에 딸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딸이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스케치북에서 찾아낸 도마뱀 그림을 동으로 본떠서 대문에 붙여본 것을 시작으로 나는 딸이 남긴 것들을 본뜨는 걸 익히기 위해 공방에 나가 시간을 보냈다. 흔적들에 집착할수록 딸에 대한 실감은 멀어지고 딸의 얼굴은 점점 뭉개졌다. 이러다가 내가 딸의 얼굴을 기억조차 못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에 밤에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딸의 사진들을 불러와 들여다보기도 했다.
- "왜 그런 말씀을 이제야 하세요?"
"너나 이제 아는일이지........"
내가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은 알고 잇었지만 설문지 하나 작성하지 못할 정도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심란할 뿐이었다.
- 이제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그런데도 이렇게 마음이 무겁군. 이 무거운 마음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막막하여 이렇게 쓰고 있지만 너의 대답을 듣고자 함은 아니다. 남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는 나이 아닌가.
<아버지에게 갔었어/신경숙 저/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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