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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던 효종

 

전정을 예쁘게 한 소나무들
세종과 효종의 무덤이 있는 영릉

 

세종 영릉과 효종 영릉의 갈림길

 

능과 능 사이 ....  산책하기 좋은 길이지만 비오는 날이라 멀게 느껴졌다.
효종릉 앞에 연지
멋진 재실

 

 

 

다른 곳은 금천교가 홍살문 이전에 있는데 이곳 효종 영릉에는 홍살문을 지나고 나서 금천교가 있었다.

 

 

왕과 왕비의 무덤을 아래 위로 배치한 동원상하릉

영릉(寧陵)은 17대 효종(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1618∼1674)의 무덤이다.

세종대왕 영릉(英陵) 옆에 있고 한글도 같으나 한자가 다르다. 처음엔 건원릉의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현종 14년 (1673)에 여주 영릉 동쪽으로 옮겼다.

 

영릉은 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하지 않고 아래·위로 만든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이고,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懿陵)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릉 주변을 비교적 가까이 가서 볼 수 있게 친절을 베풀어서 좋았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1619년(광해군 11) 5월 22일 태어나 1626년(인조 4) 봉림대군에 봉해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8년간이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그 후 풀려 나와서 1646년(인조 23) 소현 세자가 변사하자 뒤를 이어 왕세자에 책봉되고 1649년(인조 27) 5월 13일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효종은 즉위 후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를 널리 보급하였다.

조선왕조가 당한 굴욕을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59년 5월 4일

재위 10년 만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