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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김포 장릉 - 광해군의 이복동생

장릉가는 길

오늘 찾아가는 장릉의 주인, 정원군은 광해군의 이복동생이며 인조의 아버지이다.

정원군의 집터에 왕기가 서렸다는 소문에다가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정원군의 셋째 아들 능창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상소까지 올라오자 능창군을 강화도로 유배하고 정원군의 집은 몰수하여 자신의 궁궐을 지었다. 

 

아들이 유배되어 목숨까지 잃게 되고 집까지 빼앗긴 이가 바로 장릉에 누워있는 정원군, 원종이다.

정원군은 걱정과 불안의 나날을 버티다가 40세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그로부터 4년 뒤에 동생과 아버지의 애통한 죽음을 기억하는 정원군의 맏아들 능양군이 반정을 일으켜 스스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조선의 16대임금 인조다.

 

결과적으로 정원군의 집터에 왕기가 서린 기운은 능양군을 가리킨 것이었다.

애꿎은 능창군이 죽고, 속앓이 하던 정원군도 세상을 떠난 뒤에 능양군이 복수를 한 셈이 되었다.

 

광해군의 입장에서는 아버지 선조에게 밉보여 광해군이 연민의 정이 느껴지더니

이곳 장릉에 오니 광해군에 의해 쑥대밭이 된 정원군에게 마음이 쏠려 광해의 폭정을 떠 올리게 되었다.

역사는 누구의 관점에서 쓰느냐에 따라 엄청 달라진다.

 

경사진 지형이라 향,어로의 중간이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이다.

원종(1580~1619)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 추존되기 전의 군호는 정원군이다.

첫째 아들 능양군(인조)이 왕위에 오르자 대원군에 봉해졌다.

이렸을 때부터 용모가 빼어나고 태도가 신중했으며 효성과 우애가 남달라 아버지 선조의 사랑이 많이 받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피난 길에 올라 선조를 도움.

 

인헌왕후(1578~1626)는 능안부원군 구사맹의 딸로 정원군과 가례를 올리고 연주군부인에 봉해졌다.

 

인헝왕후 육경원 비석 받침돌이 남아 있다.
재실 뒤가 넓직하고 담장이 예술이다.

연못이 아름답고 재실이 멋진 김포 장릉은 다른 계절에도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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