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일단 씻어야 했고 깨끗한 옷을 입어야 했고 무슨 말을 할까, 어떤 말을 듣게 될까, 마음의 무장을 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가만히 있는 나에게 날카로운 무언가가 다가와 바뀌어야 해, 여기서 벗어나 좀 다른 모양으로 변화해야 해, 하고 말하는 듯했으니까.
- 10월에 엄마는 엄마 없는 엄마가 되었다.
- 적어도 내게 친지란, 조부모란, 고향이란 실감보다는 개념에 가까웠다.
- 할머니와 가까웠든 가깝지 못했든 할머니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찾아든 할머니의 부재, 그 공평한 부재 속에서 비로소 '나의 할머니'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모두 다 보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 그 말을 곱씹는 데서 시작해, 조금씩 그러나 오래오래.
- 그날의 미안함, 그날의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더이상 설명하기가 힘들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어차피 잘 할 생각은 없었지만 더 못하기도 힘든 밴드 연습을 접기로 했다.
- 시는 마음이라는 수면의 무늬를 흰 종이로 걷어내는 방식으로 쓰이기도 한다는 것.
- 엄마는 나를 품어 왔지만 거기에는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온 사람이 가지는 절박함과 긴장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통해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짐작했다. 우리는 그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모성이 그 자체로 완전한 조건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여러 조건들에 지지 않으려 싸우며 이루어져온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한 곳에서 칠십 년 넘게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며 그곳에서 일곱의 아이들을 기른다는 것, 아예 거동도 못할 때까지 여전히 논과 밭에서 일과를 보낸다는 것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러는 동안 할머니를 스쳤을 사람들과 고통과 어떤 냄새와 감촉과 어떤 기쁨을 상상한다. 그곳이 안식이기에 할머니는 그렇게 그리워했을 테니까.
- 다만 나는 상상했다. 운전이라는 기술을 익히는 데 문자를 아는 정도가 중요하지 않았던 수십 년 전의 어느 날, 그가 포니나 스텔라 같은 차를 끌고 도로로 나왔을 한낮을, 운전면허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에 가산점이 붙기도 했던, 오로지 그의 기술이 빛났을 어느 한순간을, 그리고 문자를 읽고 손가락으로 선택하는 프로세스를 거쳐야 반응하는 새로운 기계들과, 그 새로운 기계를 익숙하게 손에 쥐고 뒷좌석에 앉아 의문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을, 그것을 용납하고 싶지 않은 그의 강철처럼 단단한 자존심을.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잖아?'라고 항의하기 위해 타이밍을 살펴야 하는 상황은 한국에서 이렇게 잦고 불시에 등장한다.
-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11월 11일
- 미안하다는 말로 저를 놓아주었죠.
- 전쟁이라는 참혹한 고통 앞에서 벨은 "눈에 들어온 실제의 인상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추상적 이해력이 무너져내린 것 같다"고 회상한다.
- 우리는 더 이상 애써 찾아갈 곳도 봐야 할 사람들도 없는 것처럼 인천이라는 도시에 가만히 고였다. 그것은 고이는 것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흐르다 어떤 웅덩이 안에 빠져 응축되었다고.
- 언니는 그냥 집에서 가장 먼 바다를 떠올렸다고 했다. 정말 말 그대로 모래밭에서 오래오래 앉아 있기만 했다고, 밀려오고 다시 밀려나가는, 무언가를 덮고 쓸고 아주 젖어들게 하는 파도를 보면서. 그렇게 패턴을 지닌 것들은 우리를 안정되게도 하는데 결국 그런 주기 안에서 모든 것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피었다가 어김없이 지고 말 것임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 소설을 쓴다는 것은 아무리 놀라운 상상과 설정과 허구 뒤에 숨는다 해도 결국 자기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내면을 스스로 인화하는 과정이고 타인과 기꺼이 공유하는 것이다.
- 슬픔을 갱신하며 세상과 싸워야 하는 엄마.
- 억울함이 있는 자들에게 오히려 참고 그만하라고 윽박지르는 엄마 부대의 엄마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엄마가 아니라 권력자의 모습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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