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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

"네가 죽을까봐 걱정했다."

"살아줘서 고맙다."

 

- 2019년 말 가족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어 기소가 이루어지고 난 후 친구와 선후배들이 마련해준 여러 위로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취기가 돌면 항상 들었던 말이다.

 

- 장편 서사시 <한라산>으로 유명한 고교 선배 이산 시인은 대취해서 토로했다.

"나는 못 견디고 자살했을 것 같다."

 

- 스토킹에 가까운 언론의 과잉취재를 막기 위해 조를 짜서 몇 달이고 저희 집 근처에서 경비를 서 주셨던 시민들,  24시간 기자들이 집 부근에 진을 치고 있어 외출이 어려운 상황을 알고 집으로 커피와 빵을 사다주신 이웃들, 가족 건강이 걱정이 되어 여러 측면에서 점검하고 배려해주신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 절절한 기도문을 적어 보내주신 신부님, 수녀님, 목사님, 스님등 종교인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조국 대란은 검찰개혁과 그에 대한 검찰의 저항 문제이기 때문에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조국 장관 후보자 지명 전과 후에 검찰의 기조가 달라집니다. 지명 전에는 지명을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검찰이 저항을 합니다. 지명 후에는 검찰이 힘을 총동원해서 '사건을 만드는' 쪽으로 갑니다. 그게 본질입니다. 나는 지명해야 한다고 봤어요. 이인영 당시 원내 대표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이 지명이 검찰개혁의지의 바로미터라고 봤습니다. <이해찬>

 

- 조국이 낙마하고 그 자리에 다른 후보자가 들어서면 지금의 광란적인 공세가 사라질까?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 현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만들려는 사람들은 아마 더욱 기세를 올려 사법 개혁 자체를 무산 시키고 여세를 몰아 총선까지 내달릴 것이다. 온 가족의 신상과 사생활을 까발려서 조그만 의혹의 꼬투리라도 붙잡아 인신공격의 융단폭격을 마다 않는 지금의 무력시위는 잠재적인 대안 후보자들에 대한 공개적인 경고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과연 누가 지금의 광기를 버티면서까지 사법개혁을 위해 장관 후보자로 나서려고 할 것인가? 그래서 지금의 논란은 단지 조국후보자 한 명을 둘러싼 대립이 결코 아니다. 행여 조국보다 더 도덕적이고 더한 개혁 의지를 가진 인물이 다시 후보자로 지명된다면 그때는 사돈의 팔촌까지 뒤지고 묏자리까지 아예 파헤쳐서라도 주저않히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더 도덕적이고 더 개혁적인 후보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다. 이 광기의 살육을 나는 규탄한다. 그것이 적어도 지금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수호하는 길이라 믿는다. <이종필 교수>

 

- 좀 솔직해지자. 만사를 제쳐놓고 이 문제에만 집착하는 것은 조국이 검찰개혁을 이끄는 주역이었다는 사실 외에 뭐가 있겠는가. 조국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우리를 건들면 이렇게 된다'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방약무인의 오만함이 읽힌다.<김헌범 교수>

 

- 2019년 하반기 이후 언론은 나와 내 가족에 대해 스토킹에 가까운 취재 행태를 보였다. 자택 입구에서 새벽부터 심야까지 진을 치고는 가족들이 나고 들어올 때마다 카메라를 들이내고 질문을 퍼부었다. 망원렌즈 달린 카메라로 온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어올렸다. 온 가족이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가 되었다. 집에서 나온 물품을 확인하려고 재활용 쓰레기통을 뒤졌다. 아파트 보안문을 통과해 계단 아래 숨어 있다가 귀가하는 가족 구성원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질문을 던졌다. 현관 앞까지 올라와 초인종을 집요하게 눌러서 참다못한 가족 누군가가 문을 열면 카메라를 들이댔다. 부산의 어머니 집과 제수씨 집 앞에도 카메라가 깔렸다. 가족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눈은 번들거렸고, 입에는 가학성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조선일보 기자는 내가 치료받은 병원까지 찾아가 무슨 치료였는지 묻고 갔다. 동네 카페와 세탁소 등 삼점을 방문해 나와 내 가족에 대한 불만이 없는지도 탐문했다. 채널 A는 등교하는 아들을 따라붙어 버스에 올라타서 카메라를 들이내고 질문을 퍼부었다. 아파트 인근에 회사명이 붙어 있지 않은 취재 차량을 항상 주차해놓고 가족이 이동하면 추격전을 벌였다. 서울에 오셨다가 부산으로 돌아가는 어머니를 모시고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을 계속 쫓아오더니, 어머니가 내리자 어머니를 가로막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친구와 지인을 만나러 나갔다가 쫓아오는 차를 확인하고 돌아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만남 장소에 기다리다가 친구와 지인에게 카메라를 들이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 윤석열은 검찰 안팎에서 지지만큼이나 원성도 샀다. 보수 성향이 강한 검사들 눈에는 진보정권에서 출세한 윤총장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윤 좇장으로서는 검사들의 반감을 달래고 조직을 안정적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가뜩이나 여권이 환호하는 적폐수사로 정치적 중립성까지 의심받는 터였다. 윤총장은 자신의 표현대로 뼛속 깊이 보수주의자다. 검찰에 강한 불신을 가진 진보주의자 조국 전 장관과는 한 상에서 마주 앉을 수 없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검찰개혁을 설계하고 주도한 조국은 검사들에게 공공의 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조국수사는 다목적 카드였다. 친정권 검찰이라는 오해를 벗고, 정의로운 검찰 이미지도 과시하고, 검찰개혁 흐름도 견제하고, 검찰 내부 불만도 다독이고....

<조성식 전 신동아 기자>

 

- 검찰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가운데 검찰은 임기 내내 청와대 참모들과 대통령의 친인척들, 후원자와 측근들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추진한 대가로 생각하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정치적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다른 문제였다. 검찰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주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지 정치적 중립은 물론이요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개쳐버렸다. 검경수사권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럽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 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노무현>

 

-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이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것은 군사독재를 벗어난 민주화 덕분이다. 법과 절차를 의식하지 않았던 날것의 물리력이 후퇴하고 민주화의 진행으로 법적 절차를 중시하게 되자 법적 권한을 앞세운 검찰의 힘이 안기부와 보안사를 능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최강욱>

 

-참여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금 확인되는 바는 첫째, 검찰은 태생적으로 진보정권과는 유전적 코드가 맞지 않는 집단이라는 점이다. 살아온 삶의 이력이나 추구하는 가치 등 검사들의 전반적인 '정체성'자체가 진보정권과는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둘째, 검찰은 권력의 충견으로 기꺼이 용맹을 떨칠 수는 있어도, 자신들의 이빨을 약화하려는 시도는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 '마음이 놓이는' 보수정권과 '마음이 놓이지 않는' 진보정권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에 본질적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한겨레 김종구 편집인>

 

- 검사들은 과거 언론 탄압하고, 민간인 사찰하고, 거짓 자백을 강요했던 잘못은 한 번도 되돌아보지 않으면서, 검찰이 휘두른 칼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은 느끼지 않으면서, 검찰 조직 문제에만 기개 있게 덤비고 정의를 내세운다. 정말 부끄러움을 모르는 비겁한 사람들이다. 정권은 유한하고, 검찰은 영원하다.

<이연주 변호사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에서>

 

- 기자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실수로 가짜 내용을 말하는 것을 처벌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명백히 가짜인 것을 알면서 퍼뜨리거나 허위 뉴스를 조작해 만들어 퍼뜨리는 일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짜 뉴스를 처벌한다고 해서 언론을 탄압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에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는 아시아 최고 수준입니다. 누가 언론을 탄압한다고 얘기하겠습니까?

 

- 내(조국)가 자성해야 할 점은 분명히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강남좌파'로 정부 비판에 나섰지만, 자신의 '강남성'에 대한 성찰과 개선의 노력은 취약했음을 반성했다. 나와 내 가족이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이 컸고 나에 대한 공적 주목 역시 컸던 만큼, 가족 모두 더 신중하게 처신했어야 했다. 이유 불문하고, 과거 진보적 학자로서 했던 말과 실제 삶이 완벽히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을 사과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 그 선거가 나경원 가족 선거가 아니라 나경원의 선거였듯이 이번 조국 청문회 역시 조국 가족 청문회가 아니라 조국 청문회다.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된 것은 조국의 딸이 아니라, 조국의 부인이 아니라, 조국의 5촌 조카가 아니라, 조국의 이혼한 전 제수가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어느 투자회사 대표가 아니라 바로 조국이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 청문회는 법무부장관 후보자로서 조국이라는 사람의 능력이나 정책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딸, 아내, 어머니, 동생, 이혼한 동생의 처, 5촌 조카, 돌아가신 아버지 등 그의 가족을 둘러싼 의혹만 거론하다가 끝나버렸다. 이런 신상털기를 청문회라고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 장관 사임 후 어느날 갑자기 치아에 격심한 통증이 홨다. 평소 통증을 잘 참는 편이라 진통제도 거의 먹기 않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다. 진단 결과 내가 낮에는 이를 세게 악물었고, 밤에 잠을 자는 동안에는 이를 심하게 갈아 치아가 비틸어지는 등 문제가 생겼다 했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며 헤쳐나가고자 했으나, 무의식적으로는 힘이 들었던 것이다.

 몸에 탈이 생긴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한순간에 한쪽 귀가 먹어버려 보청기를 착용하게 되었다. 동생은 이가 빠져 8개의 임플란트를 해야 했다. 원래 건강이 좋지 않은 정 교수는 말할 나위도 없다. 자식들도 정신적,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다. 2019년 하반기 이후 정신과 전문의 몇 분이 가족 전체 상담이 필요할 것 같으니 시간을 내라고 연락해주셨다. 고마웠다. 그런데 계속 이어지는 재판 준비와 출석 때문에 상담을 받기 어려웠다. 그분들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상환이 일단락되면 찾아뵙기로 다짐했다.

 

- 내가 외친 '조국 수호'는 장관으로서의 조국을 지키자는 게 아니라 한 생물학적 인간으로서의 조국을 지키자는 말이었다. 서초동에는 그런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 많았다. <건국대 이종필 교수>

 

- 윤총장은 스포츠 시즌중 경쟁팀 사이에 판정 시비로 다툼이 생기자 한 팀을 위한 편파판정을 하고는 그 팀의 감독으로 변신했다. <박용현 한겨레 전 편집국장>

 

- 윤석열이 이럴 줄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윤석열을 잘못 본 것이다. 윤석열은 개의 시간에도 늑대 유전자를 숨기지 않았던 인물이다. 당시 수뇌부가 개처럼 정권에 충성할 때 윤석열은 주인없는 늑대처럼 행동했다. 그걸 현정부 지지자들이 자기 편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윤석열은 누구 편도 아니다. 윤석열은 검찰 편이다.<한겨레 이재성 기자>

 

-지금 젊은 사람들의 언어가 변화되었다. 내로남불, 공정성, 위선 같은 말들이 밈처럼 되었다.  이것이 모든 평가와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복잡한 맥락은 가지치기가 되고 위선을 저질렀느냐 아니냐만 남았다. 젊은 세대는 위선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다. 이것이 말하자면 '생각의 그물망'이 되었다. 위선이 아니라 대놓고 나쁜 짓하는 사람들은 이 그물망에 안 걸린다.<김내훈>

 

- 현 정권의 '내로남불', 위선에 대한 비판이 상당하다. 권력의 위선에 대한 비판은 늘 옳다. 그러나 위선으로 입은 상처를 솔직한 악덕으로 치유할 수는 없다. 역설적이지만 위선이야말로 선을 닮고 싶은 우리의 또 다른 본성을 증거한다. 위선이 '악이 선에 바치는 경배'인 이유다. 위선은 역겹지만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은 야만이다. 냉소하기보다는 위선의 모순 속으로 걸어가야 할 까닭이다. 이 길을 걸어야 한다.<조형근 한겨레 기고문 2021.5.21>

 

- 공포의 인간은 연민의 인간에게 진짜 얼굴이 따로 있다고 믿는다. 가면인 줄 알고 벗기려 했는데 가면이 아니라 피부라면, 그 피부라도 벗겨내서 피 흐르는 피부를 벗겨내서 피 흐르는 피부를 가면이라고 우겼다. 역사는 그것을 공작이라 부른다. 유구한 역사를 갖는 '간첩 만들기'보다 근래 더 중요한 공작은 비위를 털어 도덕성 훼손을 시도하는 '위선자 만들기'다. 가끔 일부 검사와 일부 기자가 그 일을 하청받는다.<신형철 경향신문 기고문 2020.4.29>

 

- 김의겸 기자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근무하던 중 전세금, 부인 퇴직금,은행 대출등을 모아 흑석동 건물을 샀다가 '부동산 투기' 공격을 받고 사퇴했다. 그는 이 건물을 팔고 세금을 낸 후 남은 3억 7천만원을 기부했지만, 부동산 투기 낙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흑석동 건물 앞에서 김 대변인을 규탄하던 국민의 힘 의원 가운데 박덕흠 의원이 있었다. 박의원은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와 상가, 창고 임야등을 포함해 총 289억원(시고가액)의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그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활동하며 피감기과으로부터 수천억 원대 공사를 수주하고 엄청난 이익을 얻은 정황이 드러나자 국민의 힘을 탈당했다. 그렇지만 박의원에 대한 언론의 조명과 비판은 미미했고, 김의원을 향한 '선택적 분노'는 여전했다. 

 

 

<조국의 시간/조국/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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