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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믹스커피

 주차한 대형 트럭 운전석 앞쪽으로 한무더기 노란 믹스커피 봉지들.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피곤과 스트레스에 지친 트럭 운전수의 모습도 떠오르고,

아무렇게나 무질서하게 놓여 있어 더 마음도 짠해진다.

 

저 믹스커피는 잠도 쫓고 잠시나마 위로와 위안이 되는

장거리 트럭 운전하는 분들에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품.

동료들과도 나누고 행여 떨어질세라 넉넉하게 던져놓았을 것이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잠깐의 휴식시간의 동반자인 믹스커피는

그 어느 것보다 가성비가 높다.

 

묵직한 울림을 주었던 드라마<나의 아저씨>에서는 아이유가 할머니를 옆에 뉘어드리고

믹스커피를 두 봉 한꺼번에 타서 마시는 장면은 꽤 여러번 등장하고 인상적이다.

살인자의 낙인이 찍혀 모두 등을 돌려 믹스커피 하나만이 유일한 위로가 되는 상황.

식량이자, 에너지원이며 큰 위안이 되는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

 

나도 매일 아침 믹스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타는 건 내 몫이다.

실용을 우선시하는 내가 유일하게 격식을 차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포트에 물을 따라 전원을 켜고, 쟁반을 준비하고 그 위에 잔 받침을 두 개 놓는다.

그리고 잔받침과 짝인 잔을 찾아 올려놓고 믹스를 두개 뜯어 사르륵 사르륵 쏟는다.

뜯어낸 짧은 꼭지는 긴 노란믹스 봉지 속으로 넣고 빈봉지를 가지런히 11자로 놓는다.

바로 쓰레기 봉지에 넣으라고 핀잔을 들어도......그냥 그래야 할 것 같다.

한 잔엔 물을 조금 많이, 한 잔엔 물을 적게...

조심스럽게 두 잔의 커피를 쟁반에 받쳐들고 거실로 배달을 간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우리의 의식이 된지 일 년이 넘어 간다.

 

그래서 재활용 비닐 쓰레기 봉지를 들여다보면

항상 노란색으로 강조한 그림처럼, 노란 믹스커피 봉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건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들고오는 비닐 쓰레기 봉지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그러면 믹스커피 동호회같은 동질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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