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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다가가면 그대는.....

 딸이 그동안 가깝게 지내왔던 사람과 소원해진 이야기를 하였다.

두 사람간의 심정적 거리가 서로 달랐던 것이다.

딸은 너무 가까워지는 걸 부담스럽게 느꼈을 것이고, 상대방은 더 가까워지고 싶어 했던 것 같았다.

상대방은 속에 있는 감정을 다 쏟아내고는 풀었다 생각을 했을 것이고,

딸은 모든 걸 다 털어내고 관계를 끝내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며 지켜야 할 거리가 있는데

딸은 애비인 나와 비슷해서 웬만해선 곁을 잘 두지 않는 편이다.

내 변명을 하자면, 영화나 책을 보다가 뭉클하고, 눈물이 핑도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차갑기 보다는

그동안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와 실망감에서 온 산물이란 게 더 큰 것 같다.

 

어쨌거나 딸은

상대방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게 싫었을 것이고, 상대방은 섭섭했을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와 거리를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개체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모든 개체는 자신의 주변에 일정한 공간을 필요로 하고, 다른 개체가 그 안에 들어오면 긴장과 위협을 느끼는데

가족과는 20cm , 친구와는 46cm, 회사 동료와는 1.2m 정도의 거리가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물리적 거리만 말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 거리도 포함되며 아무리 친한 관계라 하더라도 적절한 거리는 필요하고, 가까운 사이라고 함부로 그 거리를 침범하면 안된다는게 홀의 주장이다.

그 거리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고 정신적 거리는 더더욱 다를 것이다.

 

산책을 나가 앉아 있다보면, 이따금 생면부지의 사람이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저 가벼운 이야기로 끝내면 좋을 텐데, 자신의 군대 이야기며, 친구 이름까지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처음보는 사람의 군대 동기가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 이야기를 끝내는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시콜콜 이야기를 이어가며 더 나아가 내 속까지 캐려 드는 사람도 있다.

처음 만난 낯선 이라도 코드가 맞고 이야기가 통해 깊은 속내를 내비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심정적으로 가까워지려면 서로 호응하며 속도와 거리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러고보면 난 참 까탈스럽고 손이 많이 가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딸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 아버지의 그 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관계맺음'에 있어 서로 지내다보면 적정 거리는 무언간에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고 이야기 한 칼릴 지브랄의 말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자유롭게 바람이 불었으면 싶다.

그리하여 더 이상 '현대가족' '대우가족'이니하며 회사 이름 뒤에 가족이란 단어로 얽어매고,

학교 이름 뒤에도 가족으로 얽어매며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그랬던가.

침묵이 서로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관계가 친밀한 관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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