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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수박

그러고보니 올여름엔 수박 한 통 사지 않고 한여름을 보냈다.

그만큼 덥지 않은 여름이기도 했지만, 한 통을 사기에는 부담스럽고, 잘라서 파는 수박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여름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 손에는 종종 커다란 수박 한덩이가 들려있곤 했었다.

들어오시면서 아버니는 누나들에게 얼음 한덩어리 사오라고 하셨다.

그러면 누나들은 길 건너 얼음 가게에서 새끼 줄로 묶어 주는 작은 메주덩이만한 얼음 한덩어리와

단 맛을 내는 손바닥 만한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하얀 가루로 된 설탕보다 강력하고 값싼 뉴슈가를 사 가지고 온다.

 

그리고는 부엌에서 커다란 양푼을 내 놓으면 아버지는 바늘과 그리고 바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큰 망치를 가지고 톡톡 얼음을 깨신다.

칼을 가지고 탁탁 치면 금방 깨질 거 같지만 의외로 얼음을 깨는데는 작은 바늘이 제격이라

힘들이지 않고 바늘을 망치로 몇 번 치면 금새 얼음은 잘게 부서진다.

그게 신기해서 우리들도 돌아가면서 한 번씩 망치를 들고 바늘로 톡톡 얼음을 깨 보곤 했다.

바늘이 조금만 들어가도 틈이 생기면서 쫙 얼음이 갈라지는 게 재미가 있었다.

그러면 잘게 부수어진 얼음 위에 수박을 잘라서 넣고는 물을 약간 붓고 뉴슈가를 뿌리고나서

수저로 한두 번 휘휘 저으면 우리들이 기다리는 수박 화채가 완성 되는 것이다.

 

요즘처럼 사이다나 알맞은 크기로 자른 후르츠칵테일이 들어간 화채는 생각치도 못하는,

얼음 물이 2/3 수박이 1/3 되는 양만 많은 수박 화채지만

식구들마다 저녁을 먹은 이후에도 한 대접씩 먹고는 마루에 이리 저리 누우면 다들 배들이 남산 만하게 불러온다.

함포고복이란 말이 어울리는 그런 풍경이었다.

항상 다 먹고 나서도 조금은 남아도는 게 저녁을 먹은 뒤라서 그랬던 거 같다.

 

먹고 나서 엄마나 할머니 무릎을 베고 있으면

열어놓은 뒷문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밤바람과 함께 총총히 떠 있는 하늘의 별들이 보였고

더위를 잊은 우리들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정말 부러울 게 하나도 없는 무언지 모를 충만감과 안정감이 느껴졌던 여름 밤이었다.

 

양주 나리공원도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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