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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오래전 기억

 세월이 흐르고 나면 모든 것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포장되기 마련이지만

어떤 기억들은 방부 처리된 채 선명하게 남아 스스로의 부력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 군면제 되는 그 좋은 혜택을 버리고, 자네 군대가려고 그러나?

- 왜 진즉 내게 와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학기말이 되어 내게 F학점을 준 교수는 까딱 잘못해서 0.5학점이 더 나오지 않았다면 바로 징집 되었을거라며

혹여, 자신이 그 악역에 일조하게 되었을 일을 염려 했던지 그렇게 3.5학점이나 F가 나온 나를 나무랐다.

 

그래도 군대로 끌려가는 일은 면하려고 그럭저럭 졸업은 했다.

교사가 부족한 운 좋은 시절을 맞아 성적은 바닥이었음에도 졸업 직후 바로 발령을 받았다.

모든 것에 대해 염세적이고, 냉소적이었던 지라

임용 대기자가 많아 2~3년 동안 적체기를 겪었다면 폐인과 같은 힘든 삶을 살았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란 건, 인생이란 건, 불규칙 바운드 같은 거라고 생각되었던 나날이었다.

 

당시 겉은 평온했지만 암울한 시절

친구가 나의 좌우명이 뭐냐고 물었을 때

"가늘고 길게....ㅎㅎ" 농담처럼 그렇게 말했었다.

 

한 동기 여학생이 나를 <보이지 않는 고민에 휩싸인> 것으로 표현해서

속을 들킨것 같았던 기억도 난다. 

 

당시 매일 술을 마시고는 늦은 밤 펼쳐진 이불 속으로 슬그머니 기어드는 일이 되풀이 되었다.

기억을 잃은채 5년 여를 누워 계시던 54세의 엄마를 떠나보낸 아들과 54세의 홀아비는 등을 마주대고

매일 밤 죽음보다 깊은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머니를 여의고 한 달 남짓 지난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40 여 년 전 2월 어느날.

바짓가랑이가 다 젓은 채 찾아간 산동네 학교, 그곳에서 어리버리한 교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매월 외상 술값을 제하고 훌쭉해진 월급 봉투를 내밀어도,

매일 밤 술 냄새를 풍기며 통금이 임박해 기어들어와도,

그 엄했던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교사가 되어 제 밥벌이를 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여기셨을 것이다.

 

언젠가 돈암동에 갈 기회가 있어.

내가 술을 먹고 늦은 밤 귀가하던 길을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다.

우리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놀랍게도 그 길과 골목은 40 여 년 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묘하게 개발을 비껴간 곳으로, 나 개인적으론 유적과 다름없는 곳이라 추억을 공유한 동생과 다시 찾아갔었다.

"형~ 여기 내가 어릴 때 못으로 긁은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네~와~"

 

과하게 집어넣은 술을 억눌렀던 감정과 함께 토해내던 골목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추억이라기엔 다소 씁쓸한 기억으로, 그 골목은 당시를 소환해 주었다.

 

몸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던 나날이었다.

그리하여 당시엔 바람에 굴러다니는 낙엽처럼 살았고 때때로

술에 취해 감정의 양극단을 오가며 삶이란 내 통제 밖에 있는 듯 흘러갔었다.

 

대부분 젊은 교사들은 범교장 교감을 비롯한 주임들과는 대척점에 있는 반골들의 무리였다.

고분고분하고 학교 일에 다소곳하게 순종하기를 바랬지만 그러지들 않았다.

 

그때 나의 품위없는 옷차림 등 이런저런 일로 지적을 받기도 하고

공개 수업 평가회에서 잘못을 꼬집으며 은근히 자신들의 권위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무리 중 하나라고  복수를 하듯 했고, 불쑥 수업 중인 교실에 들어와 두리번거리며 책잡을 꺼리를 찾기도  했었다.

그나마 나와 함께 발령받은 동기 여교사가 지금 생각해도 파격적인(?) 옷차림으로 출근해서 

지적질이 분산되었던 건 다행이었다.

 

시국에 대해 비분강개하며 농담반진담반 대통령이 되야겠다는 한 후배에게

'너 대통령되면 나 문공부장관 시켜줘~~' 술좌석에서의 내 농담에 후배는 다음날 '함께 노력하자'는 글귀를 적어

책 한 권을 건넸다. 누렇게 변한 책과 그 글귀를 지금 다시 보려니 피식~ 웃음이 난다.

그 후배는 대통령은 되지 못했지만, 그후 일간 신문 한 페이지를 할애한 인터뷰 기사가 실린 유명인사가 되었다.

 

금호동~~금호동~~

굴레방다리~~굴레방다리~~

통금 시간에 쫓겨 택시를 잡으려는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터덜터덜 우리집으로 향하던 시절.

 그 정겨운 소리와 함께 한 긴 인연은 치기어린, '열기회'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진행 중이고

당시 총각들은 다들 60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다.

 

이스라엘 미술가 메나셰 카디슈만의 작 <떨어진 나뭇잎들>

베를린 여행중 유대인박물관에서 본 작품......내 우울한 시절의 표정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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