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낡고 삭아
그 잔해마저 날아가버려 흔적을 별로 남기지 않지만,
어떤 강한 충격을 받은 일들은 또렷하게 각인되어 언제고 불러내면 고스란히 당시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하여 다시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거나 가슴뛰게 만든다.
어느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아버지가 누워계시던 요와 이불을 끌어 안으신 채 현관 앞에 앉아 계셨다.
막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올려다보시며
"너 피난가지 않고 여태 뭐하는 거냐?" 하셨다.
순간. 심장이 쿵~~내려앉는 느낌.
긴가민가 하던 치매임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내게는 아주 강한 분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아주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딱 한 번 약한 모습을 보이곤 이게 두 번째였다.
처음 아버지가 보이신 약한 모습은 아버지의 울음이었다.
그전까지는 아버지는 한 번도 우는 걸 보지 못했고, 우시는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큰누이 결혼식이 끝나고 집에 오셔서는 마구 눈물을 흘리셔서 정말이지 큰 충격을 받았다.
언제나 듬직하고 든든하게 나를 지지해주는 버팀목이라 생각했는데.......
치매가 오자 이젠 반대로 내가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엄부자모를 실천하시려 그랬는지 우는 모습은 물론, 웃는 모습도 보기 힘들었다.
감정표현을 억제하셨고 사진 속의 모습도 항상 근엄하고 무뚝뚝하였다.
지금 살아계신다고해도 그리 잘 모시지는 못할 것 같다.
다만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것에 대한 안타까움뿐.
주변에 치매를 앓는 분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생각이 났다.
뉴욕아스터(보라색) -꽃말은 '사랑의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