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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딱지

어린 시절

우리 집 위쪽에 살던 친구네 집은 딱지공장이었다.

일반 가정집 정도보다 결코 크지 않은 집에 방 한 칸 부엌 한 칸, 그리고 마당이 있어야 할 곳에

어른 키보도 큰 커다란 딱지 만드는 기계가 있었다. 기계가 있던 바닥은 잉크와 기계에서 나오는 기름등으로 반질반질 윤이 나 있었다.

기계가 철커덕 철커덕 돌아가면서 형형색색의 예쁘고 동그란 딱지를 찍어 내면,

옆에 있는 기계는 찍어 낸 딱지를 위에서 부터 둥글고 긴 쇠막대가 내려와서는 꾹꾹 눌러서 딱지를 오려내고 있었다.

어릴 적 딱지 따 먹기도 재미가 있는 놀이였지만, 딱지공장에서 딱지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코를 찌르는 잉크냄새, 휘발류 냄새를 맡으면서도 딱지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비위가 별로 좋지도 않은 내가, 지금도 차에서 나는 휘발유 냄새가 그리 거부감이 일지 않은 것은 아마도

어릴 적 딱지공장에서 맡았던 냄새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당시 딱지공장에서 딱지를 받아가지고 포장을 하는 일은

동네 여자들과 할머니들의 소일거리 겸 용돈 벌이로 좋은 일거리였다.

 

기계가 한장 한장 떼어낸 딱지를 커다란 양푼에 포장용 비닐과 함께 받아가지고 오면 할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물론,

시간이 있는 다른 집안 식구들도 빙 둘러앉아서 딱지를 세서는 지금의 막대 풍선보다는 조금 넓은 두 겹의 비닐을 가위로 잘라서 묶었다.

묶고나서는 몇 묶음씩 상자에 넣어 포장을 했다. 마지막 마무리는 촛불에 비닐 입구를 살짝 녹여 붙이면 끝나는 일이다.

나도 할머니와 엄마 옆에서 거든다고 거들곤 했는데, 처음 딱지공장에서 딱지를 가져와 마루에 쏟아놓은 딱지 더미를 보면 '저걸 언제 다 세서 포장하나 '하며 딱지 따먹기 할 때 한 장이 귀하고 아쉬웠는데 하나도 갖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쉬는 날엔 식구들과 둘러앉아 딱지를 세다가

다 끝내고는 무릎에 딱지에 묻어있던 종이가루를 털어낼 때,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있어서

허리와 무릎이 뻐근해 식구들 모두 '아구구'소리를 내면서 일어서곤 했다.

포장이 끝나서 딱지 공장에 갖다 주면은 포장 댓가로 몇 십원씩 받아 가지고 왔던 기억이 난다.

 

딱지를 만드는 친구 아버지는 우리 또래의 다른 아버지들보다 연세가 무척 많아 보였다.

머리는 온통 허옇게 흰데다가 양 볼이 옴폭 들어가서 주름이 더 많아 보인, 완전 할아버지셨다.

사람들 말로는 딱지 그리는 솜씨로 위조지폐를 만들다가 들통이 나서 옥 살이를 하는 바람에 그렇게 늙었다고들 했지만,

사실인지 여부는 알 수가 없었다.

어린 나이에 친구에게 그걸 물어볼 수도 없었고,그저 어른들이 하는 소리겠거니 생각할 뿐.

 

당시에 딱지 따 먹기 놀이를 하면서 했던 말이 생각 난다.

'하나 빼고 글-번-계'

딱지 한 장을 뺀 그 다음 딱지에 글자-번호-계급순으로 글자가 많거나,번호가 크거나,계급이 높으면 따 먹는 놀이였다.

 

지금도 칼라풀한 포장 박스나 광고지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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