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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아무도 하지 못한 말

시인은 가난이 어울리기는 하지만,

최영미 시인이 근로장려금을 받는 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적잖이 놀랐다. 

그 유명한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잘 나가던 베스트 셀러 작가 아니던가.

 

누구보다 반체제적임에도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지 않은 시인에 대해 안도감보다는 안타까움이 일어났다.

작가회비 내기 싫어서, 주소 공개되는게 싫어서, 우편물 받아보기 귀찮아서 탈퇴를 하는 바람에 한국 작가회의주소록에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가끔 글에서 전투적인 글을 쓰는 작가가 실은, 아주 여린 감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최영미 시인도 그런 편이다. 실제의 삶에서 못다한 것을 쏟아넣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하는 바람에 엄청 얻어터져 생긴 마음의 응어리가 곳곳에 나타나 있다.

얻어터질만큼 얻어터져서 내공이 생긴 것 같기도 하지만,

너무 얻어터져 온 몸이 상처 투성이라 아마 때리려던 사람도 더 때릴 곳이 없게 된 듯 싶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미 슬픈 사람이 되어 울지 않는 것일 것이다.

 

곳곳에 그동안 시인이 해명 비슷한 글들이 중간에 삽입되어 있다.

작가가 그만큼 시달림을 받아와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고, 너무 여려서 조심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다.

'저는 특정 종교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와 같은 글 말이다.

 

아무튼 <유럽인들이 버린 신을 아시아의 어느 뭉퉁한 신이 주워 확성기 안에 쑤셔 넣는다>라는 표현은 절묘하다.

나도 좀 종교를 너무 유난스럽지 않게, 믿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터라서 공감이 갔다.

 

이젠 월세를 낼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에 짠~하기도 하고,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여기저기 본인의 책을 홍보하는 듯한 글이 곳곳에 눈에 띄어도 애교로 봐줄만했다.

 

<최영미/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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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처럼 사람만나지 않는 사람은 온라인으로라도 소통해야 한다는 닦달에 마지못해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시작했다.

 

- 후회하는 것

1. 시인이 된 것. 시는 취미로 쓰고 다른 직업을 가질 걸.....

2. 어린 나이에 저지른 결혼

3.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대학에 들어가 고생만하고, 나온 뒤에도 떼어내지 못하는 S대 꼬리표, 징그럽다.

 

- 페이스 북에 제가 근로장려금 받는 사실을 공개한 이후 제게 일어난 변화중 하나 

제가 행사할 때 예전보다 옷을 차려입게 되더라구요. 남들이 가난하다고 무시할까봐.

그래서 화려한 스카프를 둘렀는데........어제는 어울리지 않게 좀 지나쳤습니다.

 

- 저는 다만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높이 외쳤던 청소년들이 저처럼, 좌절감과 배반감을 느낄까 봐 걱정입니다.

야권의 분열로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웃는 모습을 봐야 했던 87년 대통령 선거 직후에 제가 그랬듯이....

 지금 생각해보니, 저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정서는 바로  그 배반감과 환멸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촛불의 힘으로 저는 다시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지겹도록 변하지 않던 대한민국이 변하고 있습니다. 

 

- 병실에 앉아 텔레비젼 뉴스를 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비치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재는 얼굴이 멀쩡하네, 아무렇지도 않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대통령의 안색이 저렇게 좋으냐는 당신의 한탄이셨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제 견해를 묻길래, 윌리엄 블레이크를 인용했지요.

"인간을 파괴시키려거든 예술을 파괴시켜라. 가장 졸작에 최고 값을 쳐주고, 뛰어난 것을 천하게 하라."

 

-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같은 SNS가 우리들을 모두 나르시시스트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 그게 염려되네요. 하하하.

 

- 한때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추악하게 변모해가는 모습을 나는 지켜보았다.

나와 다른 진영, '틀린'편에도 옳은 사람이 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늘 올바른 쪽도 없고, 늘 틀린 쪽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나는 절이 들었다.

도로시 파커의 시처럼, 선과 악이 미친 격자무늬처럼 얽혀 있는 세상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일 때도 있었다.

 

- 최선을 다하는 삶보다 차선을 다하는 삶이 더 어렵다.

타협을 하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 없게 된 지금, 난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되려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 "원칙을 지키는 건 쉬워요. 그냥 원칙을 지키면 돼요. 그러나 타협은 어려워요. "

타협하면서도 망가지지 않는게 중요하다. 자신이 있으면 얼마든지 절충할 수 있다.

자신을 지킬 자신이 있으면 악마하고도 거래하는 게 정치 아닌가.

 

- "난 우리 언니가 센 여자인줄 알았는데(소설을 보니)아니네."

책을 읽어가는 도중에 좋다며 문자를 서너차례 보낸 여자 친구.

가까운 이들도 오해 했는데 독자 대중들이나 기자들에게 내 작품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기대하면 안되리

 

- 젊어서 수영장에 오면 가끔 내 폼을 교정해 주겠다고 귀찮게 말을 거는 청년들이 있었는데,

나이가 드니 누구도 내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간섭받지 않는 건 좋은데, 할머니 대우를 받는 것 같아 섭섭하네요.

 

- <고대문화> 편집 후기에 실린, "우리는 버티는 것 말고, 더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을까."라는 문장이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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