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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당신으로 충분하다

 어느날 정혜신의 책을 검색해보니 거의 대부분을 읽었다.

어쩌면 작가에 대한 신뢰 때문이기도 하고, 읽고 나서도 후회한 적 없이 만족감이 컸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가는 상실감이 큰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서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분이라서 더욱 믿음이 갔다.

 

이 책은 저자가 24년간 상담을 해 오면서 언젠가는 한 번에 사람들이 물은 것에 대한 대답을 찬찬히 하고 싶었는데 바로 이 책이 사람들의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낯모르는 사람끼리 깊은 신뢰와 호감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바탕 위에서 자신을 활짝 열어가는 과정, 

그 안에서만 가능한 뜨거운 지지와 위로, 격려 그리고 깊은 깨달음을 얻는 일련의 과정, 그것이 바로 집단 상담인데, 

이 책은 서로 모르는 분석 결과 평균적 모습을 보인 30대 여성 4명의 상담자와 저자가 6주간에 걸쳐서 진행한 집단 상담을 토대로 한 책이다.

 

규칙은 단 한가지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그대로 가공하지 않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자기 규정에 갇혀 버티며 살아가는 내담자들이 자신들이 덮고 있는 외피를 한꺼풀씩 벗겨내며  상처가 있는 자기 자신을, 결핍이 있는 자기자신을, 그냥 충분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충분한 감동이 느껴졌다.

그런 두꺼운 외피는 남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속이게 되는 건 아니었을까?

 

우린, 나는 결핍을 메우기 위해 자꾸 자꾸 뭔가로 채워야 하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 의미없이 헛되게 시간을 보내면 뭔가 잘못 산 것 같기도 하고, 남들은 충실한 하루하루를 사는데, 퇴임을 한 나는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 아직도 나에게 차가운 황지혜

* 언니한테 감시받는 김해인

* 누가 나를 싫어하는 거 같으면 너무 괴로운 양미란

* 사람 모형을 한 로봇 같았던 신미수

 

네 명이 스스로의 종착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때론 상담자의 심정으로, 때론 내담자의 심정으로 읽었다.

 

그리고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많은 책들의 제목이 떠올랐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한시도 한 눈 팔면 안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렇게 한가하게 살고 있는거야?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수많은 자기 개발서들은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책이 아닐런지.....

어느 시인이 우린 이 세상에 소풍 온 거라고......놀러온거라고......

그런데 우린 자꾸 뭔가를 해야 하는 강박에, 나와 남들에게 자꾸 뭔가를 하라고 강요를 해오지 않았던가.

당신으로 충분하고, 이대로도 충분하다. 

뭘 더 바라는가.

 

<정혜신 / 도서출판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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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일은 그 자체로 큰 위로이고 안전함의 근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가장 치유적인 순간이다. 내게 툭툭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들을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잘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아 그때 내가 그렇게 화가 났었구나. 내가 그때 그것을 그렇게 원했었구나 하는 생각들. 내가 그랬구나. 내가 그렇구나. 하는 자각들이 분명해진다. 그런 식으로 나를 또렷하게 다시 볼 수 있으면 그때부터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히 알게 되고 그만큼 자연스러워진다. 이런 느낌과 자각없이 길을 찾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내가 나를 분명하게 느끼고 감지하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직업적 겸양이나 의례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사람은 관계에 따라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는 다면적 존재이다. 아들에게 절절매는 아빠가 부하직원에게 냉정하고 사나운 사람일 수 있고, 남자에게 거칠게 구는 여자가 여자 친구들에게는 자상한 언니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관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사람들의 모습엔 나름의 독특한 심리적 기제와 배경이 있다. 그 얼굴의 면면을 수맥 찾듯 짚어나가면 마침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내적 욕구들을 만나게 된다.

 

-해결의 방법론을 몰라서 문제 해결을 못하는게 아니다. 해결법에 대한 팁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러나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분명하고 깊은 깨달음이 없는 상태에서 급전 당겨 쓰듯 강구한 해결책들은 궁극에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해결책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도 막상 이야기를 하려면 도대체 어떤 얘기를 해야 하는 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막막해한다. 자기의 진심, 속마음을 현실의 누군가에게 제대로 말해본 경험이 전무해서 그럴 수도 있고 정신과 의사에게 말하려면 잘 정리해서 제대로 표현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때문일수도 있고(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사가 자기를 무시하지나 않을지 염려하기도 한다.) 자기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아픈 얘기를 끝도 없이 하면서 위로받고 무언가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어떤 이야기만큼은 적극적으로 피하고 싶은 마음도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 둘 사이에서 말하고 싶은 쪽으로 마음이 한발 더 기울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상담자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누구나 방어기제 없이 살 수는 없지만 내 방어기제로 인한 빛과 그림자는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 말고 네 마음을 말해봐~~

 

-사람의 모든 행동, 태도의 이면에는 반드시 무의식적 이유가 있고 근원이 있다는 생각, 널리 퍼져있는 무의식 결정론이다. 틀린 이유라 할 수 없지만 그 생각이 족쇄가 되면 자기 마음과 감정을 자유롭게 펼치거나 자신을 자유롭게 성찰하는 일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심리학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저지르는 부작용이다. 내 말이나 행동의 이면을 자꾸 따져봐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은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가로막는다. 아무리 옳고 정당한 진리라고 할지라도 그에 대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에 강박관념을 갖게 되는 순간, 그 진리는 사람을 속박한다. 이미 진리가 아니다. 그때의 진리란 반치유적인 압박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이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것은 의외로 비판이나 비난등 명백한 공격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깊은 감정, 상처의 경험들을 얘기했는데 상대가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더 깊은 상처를 받는다.

 

타인에게 공감을 받는다는 것은 내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내가 그런 감정을 가져도 괜찮다는 것을 확인받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사람은 깊은 위로와 함께 근원적인 안정감을 얻게 된다.

 

-사람들이 자기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고 오래 덮어두고 있는 것은 타인들의 이해못해주는 반응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상처에 대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다 내가 잘못해서, 내가 부족해서등의 틀로 자신의 상처와 자기를 단정하고 있기 때문에 덮어둘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상담실에서 치료자에게 진리로 통하는 문장은 단 하나다. ‘내담자는 언제나 옳다. 이대로 괜찮다. 여기까지도 괜찮다. 정말 이것도 괜찮다. 사실은 다 괜찮다. 너는 언제나 괜찮아. 너는 옳아.'

 

-아이들에게 500원짜리 동전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가난한 집 아이들이 부잣집 아이들보다 더 크게 그리는 심리학 실험이 있다. 결핍이 클수록 그것의 실체에 대한 인식이 과장되어 나타난다는 뜻이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자들 중에는 맞으면서도 남편을 계속 챙겨주거나 남들에게 그런 남편을 변명해주는 것도 혀를 찰 수 있지만 내면의 결핍동기를 생각하면 앞서의 동전 그리기와 비슷한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대한 자각과 인정 이후에 따라오는 것이 우울이다. 오랫동안 갈망하던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면 맥이 풀리고 무력감이 들고 우울해진다. 당연하다. 이때의 우울은 치유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성찰과 치유의 과정을 제대로 밟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에 무기력해지고 멍해지는 자신을 보면서 내가 뭐 잘못된 거 아냐? 이러면 안되는데하며 자신의 상태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하게 되면 문제가 더 꼬인다. 마음껏 우울하고 마음껏 무력해도 된다. 충분히 그러고 나면 간절했던 그 욕구로부터 심리적 거리를 갖게 된다.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고 나면 그 욕망과 욕구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게 된다.

 

-어려운 시절을 거치며 누구보다 독립적으로 살았고 그래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게 되는 미수, 어려운 시간을 보낸만큼 누군가에게 더 많이 의지하고 싶은 속마음을 가진 해인, 사람마다 자신이 소화해나가는 방식이 다 다르다. 그게 사람이다.

 

-공감이란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경험한다는 지혜, 한사람 삶의 역사적 순간이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일 것이라고 나는 느낀다. 남들 보기엔 흔적도 보이지 않는 사소한 순간일 수 있지만, 지혜의 치유의 경험이 무척 진하다.

 

- 마음 속으로 기립박수를 치고 있어요.

 

-우리는 자신의 상황을 바라볼 때 감정 이입 용도의 현미경도 필요하고, 동시에 나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망원경도 필요하다. 20층 빌딩 위에서 땅 위로 지나가는 사람과 차를 보면, ‘뭐가 바쁘다고 저리 움직이나하는 조감력이 생긴다. 절로 사람과 삶에 대한 연민이 생긴다. 나와 내 상황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가지고 볼 수 있다면 그 거리가 주는 핵심 미덕은 연민이다. 나란 존재에 대해 여유로운 거리를 확보한 채 연민할 수 있다. 연민은 자신을 따뜻하게 응시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각이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불완전성을 고려한다면 직간접적으로 이런 환경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인간은 없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부모의 일상적 조건 속에서도 아이에게 치명적인 결핍이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가 결핍의 징후를 보일 때 부모 입장에서 그것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한테 뭘 어떻게 했다고 이러느냐하며 답답하고 억울해 할 수 있다.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자기 감정을 반듯하게 정리하고 통제하려다 보면 언제나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마음결, 감정결 같은 것은 본래 반듯하게 정리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모순된 것들이 동시에 들어 있고, 하나의 대상이나 상황에서도 동시에 여러 가지 상반된 감정들이 생기는 것, 그것이 사람 마음이다.

 

-상담이란 조금 특별한 기차 여행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치유자인 나는 중간역 어디에서 기차에 올라타는 사람이다. 출발역에서부터 타고 온 누군가와 함께 긴 얘기를 나누다. 어느 역에선가 나는 내리고 그는 자신의 기차를 타고 종착역까지 계속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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