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 학창시절을 보냈던 돈암동 산동네.
이웃집 처마 밑은 딱지를 치거나 어린 남자 아이들 특유의 유치한 잡담을 나누고,
겨울이면 추위를 이기려 처마 밑 온기가 있는 굴뚝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 고학년이되면서는 바둑이나 장기, 또는 오목을 두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 동네에는 나와 바둑 실력이 엇비슷한 아저씨가 한 분이 계셨다.
어린 두 딸의 아빠였는데, 딸들의 이름은 세라, 소피였다.
딸들의 이름이 특이해서도 기억에 남아 있지만, 어린 딸들을 돌보는 사람이 주로 아빠인 것도 특이했다.
국민학교 고학년 때인지, 중학교 때인지. 여름 방학이었는지 일요일이었는지...
세라,소피 아빠와 처마 밑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세라, 소피의 엄마인 아주머니를 본 적은 있을 테지만, 지금 내 기억에는 남아있지 않다.
대부분의 낮 시간에 두 딸을 돌보는 사람은 주로 아저씨였기 때문이다.
왜 아저씨는 일을 안 나가시고 한낮에 아이를 보시는지,
요즘 당돌한 아이들이었다면 "아저씨 무슨 일 하세요?" 하고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른에게 그런 질문을 할리없는 숫기없는 아이였다.
그날 바둑판에 반 정도 바둑알이 채워질 쯤,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후두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며 비가 들이쳐서 바둑판의 1/3가량을 적시고 있었다.
한여름이긴 하지만 비 때문에 몸에 한기가 느껴지고 팔뚝에는 소름이 돋았다.
반 팔 런닝셔츠 바람인 앞에 앉은 아저씨도 춥게 느껴졌다.
아저씨의 팔에 안긴 작은 아이는 칭얼거렸지만 그럼에도 우린 바둑에 몰입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입으로 연신 아이를 얼르는 소리를 하고
손으로도 아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칭얼대는 아이를 다독이고 있지만,
눈과 온 신경은 바둑판에 고정되어 움직일 줄 몰랐다.
한여름 옷차림인 큰 아이도 아버지 옆에 붙어서 한기와 지루함에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비가 더욱 억수같이 쏟아부어 좁은 처마 밑에서는 도저히 바둑을 둘 상황이 안되었다.
그제서야 아저씨는 바둑을 그만두자고 하셨다.
난 말없이 바둑알을 정리하고 접이식 바둑판과 알통을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살아있다면 그 아저씬 80 후반이나 90대 일테고,
아이들은 중년 여성이 되어 있을만큼 세월은 흘렀다.
당시에는 모든게 황량하고 열악한 시대였지만,
세월이 흐르니 그 시대마저 예쁜 추억으로 덧칠이 되어 그려진다.
비오는 날 장독 위 데코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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