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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남산의 부장들

2인자가 1인자에게 묻는다.

- 각하 어떻게 하는게 좋겠습니까?

- 임자가 하고 싶은대로 해.


영화를 보는 중 이 대사가 총 4번 나온다.(한번은 녹음된 내용으로 되새기는 내용)

이 말은 1인자인 내 심중을 헤아려 일처리를 하고 끝나고 나서 모든 책임은 2인자인 네가 뒤집어 써야 한다는 뜻이다.


박대통령이 서거한 1979년 10월 26일....내가 햇병아리 초임 교사 시절이었다.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은 누구나 함께 아는 이야기라 맥락과 전후 사정이 빤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겐 근현대사 역사책 속의 이야기라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와는 또 다른 시각으로 볼 것이다.

다음날인 27일 아침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뉴스를 들었다. '대통령 유고'라는 뉴스....


당시 김형욱 전 정보부장은 미국 하원에서 박정희의 부정적인 증언을 하고, 박정희는 눈에 가시같은 김형욱을 어쩌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국내에선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으로 인한 불만이 쌓여가고 그 와중에 야당총재인 김영삼을 제명하기에 이른다.


이에 부마사태라고 일컫는 부산, 마산의 소요가 벌어진다.


대외적으로 2인자인 정보부장을 제치고 과격한 경호실장인 차지철이 박대통령의 2인자 행세를 한다.

김재규 정보부장은 대통령과 경호실장, 정보부장, 보안사령관 사이에 외톨이가 된 것이다.

정당하지 않은 무력으로 권력을 쟁취한 자들이 상층부에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적을 많이 만드는게 아닐런지.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많은 국민들의 시선이기도 하다고 생각된다.


야당 총재 제명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고, 어떻게 해서든 전 중정부장인 김형욱을 설득하려고 하는 김재규와 

소요사태는 탱크로 밀어버려야 하고, 각하가 곧 국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호실장 차지철은 사사건건 부딪친다. 

그 사이에 박대통령은 차지철에게 점점 기울게 된다.


정보부장 김재규와 경호실장 차지철은 김형욱 제거에 충성 경쟁을 벌인다.

차지철보다 앞서 김재규쪽에의해 파리에서 사살된 김형욱은 가축 사료를 만드는 분쇄기에 넣어진다.


차지철보다 한발 앞선 김재규가 김형욱을 제거하게 되었지만 박정희는 친구도 죽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으로 치부한다.

고스란히 악역은 중정부장인 김재규가 맡게 되는 것이다.


김형욱도 박정희의 2인자 노릇을 하며 악역을 맡다가 팽당해지자. 해외로 도망을 친 것이다.

김형욱을 설득하려고 온 김재규에게 너도 나 처럼 그렇게 될거라는 이야기는 설득력있게 들려왔다.


경호실장 차지철은 자신의 심복 하나를 중정에 심어놓는다.

중정요원인데도 상관인 중정부장의 말을 듣지않고 차지철 경호실장의 말을 듣는 스파이가 되어 중정부장을 도청하기 까지 이른다.

이를 알게된 중정부장쪽에서 역으로 도청을 해서 경호실장 팀보다 먼저 김형욱을 제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기운 추를 되돌리지는 못한다.

정보부장(이병헌)의 뒤에서 귓속말을 주고 받는 대통령과 경호실장을 보는 나도 고스란히 이병헌의 분노가 느껴졌다.


이병헌의 얼굴이 자주 클로즈업되어 비춰지면서 그의 내면의 변화를 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묘미.

과격하고 강성인 경호실장 차지철에 비해 감성적인 정보부장 김재규가 밀려나는 것은 최고 권력자의 비극적 말로를 예고하는 듯했다.


막다를 곳까지 몰려 더이상 몰릴 때가 없는 김재규가 최후의 선택을 하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인 10. 26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워낙 유명한 말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김재규의 이 이야기

"각하~ 이런 버러지같은 놈을 데리고 무슨 정치를 한다고 하십니까? 하야 하십시오~~" 하면서 방아쇠를 당긴다.


어두운 화면 속에 측광과 후광에 비친 인물들의 얼굴들,

특히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중정부장을 잡은 장면은 그 내면이 잘 표현된 명장면이라 여겨졌다.


장엄한 음악 속에서 중정부장에게 김형욱 제거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귓속말로 전해 듣는 대극장에 앉아 있는 중정부장 역의 이병헌의 얼굴. 

그리고 살해당한 김형욱이 분쇄기에 들어가면서 이어서 이병헌이 앉은 극장의 무대의 불이 꺼지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어 보여진다.

영화 <대부>에서 세례 장면과 복수장면이 교차되는 장면도 생각났다.


이병헌은 안경을 써서 전작들에서 맡은 배역의 인상을 지우는데 일조한 듯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금고에서 돈을 꺼내 배낭에 넣고서는 대통령의 자리를 뒤돌아보는 마지막 장면은 

그 이후에 현실에서 벌어진 많은 일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후 박대통령 시해사건 수사를 하며 47일 후 전두환이 권력을 쥐게 되어

또 다시 군사정권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같은 사건을 다룬 훨씬 이전에 나온 <그때 그사람들>이란 영화에 비해 남성적이고 심리묘사가 뛰어난 영화다.







정보부장과 경호실장의 갈등



미국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전 중앙정보부장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긴장하는 전 중정부장



미국까지와서 설득하는 현 중정부장과 설득 대상인 전 중정부장



2인자인 정보부장이 도청을 통해 1인자인 대통령의 속내를 염탐한다.





국회의원의 쪼인트도 까는 무소불위의 경호실장은 밤에 탱크 시위를 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이에 정보부장(이병헌)은 화가 치민다.



시해 당일 - 헬기를 타고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장으로 가는데 경호실장이 차갑게 한마디 내뱉는다.

"당신 자린 없어~~" 헬기가 떠나고 홀로 버려진듯 남은 중정부장(이병헌)-마음 속 계획을 실행에 옮길 결심이 선다.





이병헌을 보면 항상 아쉽게 느껴지는 것.....키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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