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 중 하나인 한낮 볕을 쬐며 걷는 시간.
날이 추워졌지만 양지바른 곳을 찾아 길을 걸으면 제법 걷는 맛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코스로 한시간 가량 산길을 걷는다. 천천히.....
길은 적당히 물기를 머금은데다가 쌓인 낙엽들로 인해
무릎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을 만큼 푹신하다.
그런 부담없는 걸음걸이로 인해 생각은 더 깊어질수 있고 오감으로 들어오는 다양한 감각들을 더 자세하게 느낄 수 있다.
바람은 살랑 불어 다소 얼굴이 차게 느껴지지만
눈에도 상쾌한 공기가 스며들어 뻑뻑했던 눈도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다.
따라라라라락~~
나무를 쪼는 새가 만들어 내는 소리는 공명이 좋은 목관악기 소리처럼 들린다.
이따름 그와 비슷한 또르륵 탁, 또르륵 탁~~목탁 소리가 스님의 독경 소리와 더불어 가까운 절에서 들리기도 한다.
나처럼 산책하던 길 위의 산비둘기 한 쌍은 내가 전혀 해칠 의사가 없음에도 푸드득 날아오른다.
손으로 쥐면 손아귀에 들어갈 듯 작은 새들이 이 겨울, 먹을 것을 찾아 덤불 숲을 뒤지고 있고,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들은 또로록 또로록 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있다.
어두운 계곡을 배경으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가느다란 나무 줄기는 가는 펜으로 그린 세밀화의 선처럼 보인다.
다른 잎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노는 잎들을 이따금씩 바람은 다른 곳으로 옮겨준다.
바람 선생님의 이끎에 따라 또르르 굴러 어울릴만한 다른 잎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안정감있게 앉는다.
칸트가 매일 같은 시각에 걸어 시계처럼 느껴졌다는 철학자의 길도 있지만, 난 그런 엄격한 메뉴얼을 적용하진 못한다.
스트레스 받지 않는 느슨한 메뉴얼에 따라 움직이며 산책이 끝나면 작은 뿌듯함을 느끼는 정도로 만족이다.
몇 년 전에 갔던 칸트가 매일 같은 시각에 걸었다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