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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종이 신문

무슨 전화인데 그래?

자꾸 신문 계속 보라는 전화야.


그동안 보아오던 신문을 끊으려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

사람을 바꿔가며 전화를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구독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구독을 부탁하는, 수화기 넘어 들리는 소리는 부탁의 수준을 넘어 강요로 들리기도 할 지경이다.


종이 신문을 오랫동안 보아왔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에서 보아오던 한 신문은 엄혹한 독재 시절 광고가 끊기는 상황도 있었다.

독재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 신문 기사를 게재하던 신문에게 가한 일종의 테러였다.

신문은 검열을 당해서 기사가 삭제된 채로 여기저기 빈 공간을 남긴채 배달되었다.


대부분의 광고가 끊기게되자

신문 하단 광고난에는 독자들이 십시일반 광고비를 내고 힘내라는 격려성 광고를 게재하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도 어렵게 버티는 신문을 도와야 한다며 계속 구독하셨다.

대문 안에 떨어진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집어들고 들어오며 1면의 사진을 보는 일은 아침을 시작하는 일과였다.

라디오와 더불어 우리집에 세상사를 전달해주는 중요한 매체여서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고 놀라기도하고, 때론 두근거고, 때론 환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신문은 보수쪽과 대기업을 옹호하는 이른바 보수에 치우친 신문이 되었다.

마침내 조중동이란 이름은 시정잡배나 쓰레기와 동일한 수준의 의미로 불리우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실제로 뜯지도 않은 신문 뭉치가 계란판 제작하는 곳에 쓰인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서슬퍼런 시대를 버티며 살아온 신문이 어쩌다 그 지경이 되었는지....

아마도 언론이 그 본분을 잃고 권력을 가지려 하거나, 힘을 가진자에 기대어 약한자를 업신여긴 까닭 아닐까?

그럼에도 그냥 관성처럼 보고 있었다.


지금은

신문 한 가지를 보면 두 신문을 공짜로 넣어주어 무려 3종류의 신문을 보고 있는 중이다.

가끔 여행 등으로 집을 비우면 집 앞에 쌓이는 신문 처리도 골치라.

매번 경비 아저씨께 부탁을 드리곤 해서 미안하기도 했다.


신문을 결정적으로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조국 기자회견 다음날이다.

분명 우리 둘이 앉아 처음 부터 다 보았다.

그리곤 기자들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다음날 신문 지면엔 우리가 빤히 보았음에도 우리가 갖게 된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만일 우리가 기자회견을 보지 않았다면 우린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믿을 수도 있었을 것이었지만,

우리가 눈 똑바로 뜨고 본 것조차 매도 당하는 듯한 어이없는 황당함을 느꼈다.


나는 휴대폰으로 기사를 보기도 하지만, 종이신문이 주는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편이다.

그래서 바른 정론의 신문이라면 기꺼이 보아오던 신문을 계속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앞으로 또다시 구독을 강요 한다면 '그럼 종이 쓰레기를 처리해주겠느냐' 고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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