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자리에 서 본다.
나는 강연에서 어쩌다가 조는 사람들만 봐도 의기소침해진다.
내 얘기가 재미없나, 지루한가, 잘못됐나 하는 자책감이 든다.
그 쓸쓸한 기분이 감당이 안 돼서 비자발적인 청중이 모인 자리는 가급적 피한다.
그렇기에 더 의아하고 염려스러웠다.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아이들이 벼 이삭처럼 일제히 고개 숙이는 그 처연한 졸음의 풍경을 어떻게 날마다 견디는 걸까.
한 고등학교 교사들 책모임에 초대된 적이 있다.
자퇴하는 아이들이 그런단다. 학교에 와봤자 잠만 자고 하는 일도 없어서 그만둔다고.
그런데 그 하는 일 없는 학교의 복판에 자기가 있다고 한 선생님이 웃음 띤 슬픈 눈으로 말했다.
다른 교사는 글을 써왔다. “떠나가거나 무너져버린 친구들. 그 와중에 나는 직업인으로서 교사가 되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되지 못함을 한탄하는 교사인데, 때로는 온종일 엎드려 있는 학생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정지하고 싶다며 속으로 울기도 하는 것이다.”
한페이지 분량의 글을 그가 울먹울먹 읽어내려가는 사이 다른 교사들의 눈자위도 붉어졌다.
교실에서 눈물 흘리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의 모습은 낯설었는데 묘하게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알까. 선생님도 이토록 마음이 아프다는 걸, 너희와 잘 해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는 걸,
매 순간 무력감에 주저앉는 자신을 일으켜 교탁에 선다는 걸 말이다.
선생님의 눈물이 아이들의 지친 마음에 가닿는 장면을 상상하자 나는 잠깐 마음이 환해졌다.
서로 밀고 밀치며 욕망의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일부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언론을 장식하고 도드라져 보이는 세상,
그러나 우리 사회 곳곳에는 졸음을 물리치고 눈물을 훔쳐가며 때로 한권의 책에 의지해 말문을 틔우고 고민을 나누며,
그러니까 제 가진 생명력을 총동원하여 매일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으로, 답 없는 공교육의 뿌리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작가 은유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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