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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터키 - 이스탄불에서 7일째

오늘도 하늘이 흐렸다.

하지만 구름이 두껍지가 않아서 중간 중간 구름 구멍도 뚫려있었다.

마치 하늘에 솜을 얇게 펼쳐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해가 언제 올라왔는지 모르게 올라와 있었다.

끼룩끼룩~~갈매기들이 오늘따라 요란스럽게 운다.

 

누룽지 백숙을 먹었다.

식탁 위에 어제 뜨거운 후라이팬을 행주를 깔고 올려놓았는데도 식탁 위에 후라이펜 자국이 동그랗게 생겼다.

행주로 박박 문질렀는데도 안 닦인다. 주인이 오면 이실직고 해야겠다.

 

오늘은 예레바탄을 보고 갈라타 탑을 가기로 하였다.

 

예레바탄은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긴 계단을 걸어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내려가서 예레바탄 지하 저수조에 들어서니 마치 지하 도시를 보는 듯하였다.

단순히 물만 담아두는 곳임에도 기둥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는데 이곳 저곳에서 뜯어온 것이라고 하였다. 

기둥의 갯수가 총 336개나 된다고 하였다.

각기 다른 신전에서 가져온 기둥으로 빠른 시간(당시로서는 빠른 2년 정도)에 만들었다고 한다.

한곳에는 돌로 만든 메두사 머리 2개가 각각 기둥의 받침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그리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용한 것인지 여러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메두사 머리가 하나는 옆으로 또 하나는 거꾸로 놓여져 있는데 받침으로 잘 맞추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도 하는데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다보니 일부러 괴물의 힘을 빼려고 거꾸로, 또는 옆으로 놓았을런지도 모르겠다.

 

 

 

 

눈물을 흘리는 기둥은 다른 기둥과는 모습도 달랐지만, 그 기둥만 연신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동글동글한 문양이 눈을 연상시켜서 흘러내리는 물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 기둥에는 구멍이 하나 손가락 들어갈 정도로 뚤려 있었는데

아야 소피아 기둥의 구멍처럼 사람들이 손가락을 넣고 원을 그리면 소원을 이룬다는 구멍이다.   

 

나와서 귈하네 공원을 들어갔는데 입장료는 없었다.

궐은 '장미'를 뜻하고, 하네는 '집'이니 그냥 귤공원 그러니까 장미의 집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셈이다.

 

그곳을 나와 바닷가를 끼고 난 길을 걷는데

여학생 셋이 아주 요란스럽게 떼창하듯 군가 부르듯, 함께 크게 노래 부르며 걷다가 우릴 보더니 '헬로~~'하고 인사를 한다.

히잡을 두른 나이든 다른 터키 여성들과 달리 발랄한 학생들 모습이었다.

비록 머리에 수건을 동여 매듯 히잡을 쓰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전혀 매여있지 않은듯 했다.

 저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점 여권도 신장 되리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걸 우리나라가 지금 겪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미투 운동도 남성 위주와 권위주의의 산물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여권이 아직 미흡하다고 여기지만 이슬람 여성들에 비해선 천지 차이일 것이다.

그래서 종종 여권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곤 OECD 국가중 아주 낮은 편이다.' 는 표현을 쓰곤 한다.

 

바다 위로는 아침 먹잇감을 찾아나선듯 갈매기들이 떼지어 요란스럽게 날고 있었다.

뱃편과 가격과 시각을 간단히 알아보고 탁심 광장에 갔다.

 

탁심 광장에는 지난번 비가 왔을 때보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 날씨는 비는 오지 않았지만 그때 보다 더 쌀쌀했다.

 

광장 한쪽에서는 이 겨울에도 야외에서 꽃을 팔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얼마나 추울지, 겨울이 따뜻한 이곳이 부러웠다.

카페에 들러 푸딩과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몸을 녹였다.

2층에서 내려다보면서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지루할 때까지....

 

지나가는 수염을 기른 남자들을 보고 있자니 언젠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수염이 성인 남자의 상징처럼 여기기도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가끔 말끔하게 면도를 한 사람도 볼 수 있었지만 수염 달린 남자보다 훨씬 적었다.

그리고 터키 사람들은 다리에 비해 허리가 긴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여자들의 키는 작아 보였다. 2층에서 내려다봐서 더 그랬을까?

 

거리에 젊은 연인들도 많았으나 다른 나라에 비해 적극적으로 애정 표현을 하는 남녀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거리에도 일정한 규격의 붉은 리어카에서 빵과 군밤,옥수수를 팔고 있었다.

 

카페에서 나와 이스티크랄 거리를 걷다가 성 안토니오 카톨릭 성당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촛불을 켜고 잠시 앉았다. 오래간만에 앉아보는 성당이다. 성당을 나와서 구운 감자로 만든 쿰피르를 먹었다.

길을 오르내리며 딸아이가 가 보라고 권한 순수박물관을 구글 지도를 보며 골목을 오르락내리락 어렵게 찾아 갔더니

오늘따라 문을 열지 않는 날이었다. 겉모습만 보고 갈라타 타워 전망대를 올랐다.

 

갈라타 타워 전망대 입장료는 일인당 35리라였다.

길게 줄을 서 있어서 30분 가까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꼭데기에 오르니 밖이 트여 있고 약간 경사가 진듯해서 아찔하고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한 바퀴를 돌면서 이스탄불을 내려다 보았다.

둥근 돔과 삐죽삐죽 미나레트로 이루어진 모스크가 이스탄불의 상징임을 알려주듯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전망대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다행이었지 걸어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면 나 혼자 올랐을 것이다.

갈라타 타워를 내려와서 보니 실크로드 우호협력 기념비라고 한글과 터키어로 각각 씌어진 기념비가 서 있어서 반가웠다.

경상북도와 이스스탄불 시의 우정 협력으로 세운 비라고 적혀 있었다.

 

기념비를 보고 있는데 심술궂은 한 남자가 순한 개의 꼬리를 잡아 당기는 바람에 순하디 순한 개가 컹컹 짓었다.

어디서나 만용을 부리는 꼴불견 남자는 있게 마련이다.

 

튄넬을 타고 내려와서 다시 트램을 타려고 기다리는데 한 터키 아가씨가 와서 우리 말로 '한국 사람이세요?'하고 묻는다.

놀라서 어떻게 어려운 한국말을 이렇게 잘 하느냐고 하니까

 "한국말 정말 어려워요."하면서 터키어가 한국어와 어순이 비슷해서 쉽게 익힐 수 있었단다.

그러면서 자기 친구가 서울 문래동에 가 있고 자기도 한국의 고려대학교 가고 싶단다.

자기는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데, 자신은 한국 남자가 좋아 할 타입이 아니란다.

우리는 한국 남자가 좋아할 타입이라고 말해 주었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낯선 사람에게 시시콜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던 아가씨는

그런데 터키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관광 왔다고 하니...

미국이 예쁘고 좋은데 터키에 왜 왔느냐고 해서 터키도 예쁘다고 말해 주었다.

트램을 같이 탔는데 다시 우리 쪽으로 와서는 사탕을 건네면서 이것 저것 묻는다.

사진을 찍어도 괜찮으냐고 물으니 기꺼이 포즈를 취해준다.

우리는 작별을 고하고 내렸고 그 아가씨는 다시 자기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터키의 면적은 한반도의 3.5배가 조금 넘는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국민소득이 터키에 비해 3배가 넘는 나라인데다 형제의 나라라고 하니 오고 싶기도 할 것 같았다.

독학으로 한국어를 저렇게 능숙하게 할 정도라면 어떤 어려움도 능히 헤쳐나갈 것이다.

 

우린 귈하네에서 내려서 과학기술 박물관에 들어갔다

1500년대의 것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 장영실 생각도 났다.

실크로드를 타고 조선시대에 청을 통해서 일부 들어오기도 했을 유물들이 있었을 것 같았다.

 

거리를 걷다보니 한 음식점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앉아서 괴즐레메를 만들고 있었다.

하얀 머릿수건을 하고 하얀 옷을 입고 표정 없는 얼굴로 하얀 밀 반죽을

일정한 동작으로 주무르고 있는 걸 보자니  AI시대의 사람닮은 로봇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오는 길에 우리가 맛있게 먹은 함시(멸치 구이)집은 지금은 다 떨어졌는지 다른 걸 팔고 있었고

일하는 남자 아이는 우릴 보더니 웃으며 아는 체를 한다.

마치 '오늘도 늦어서 멸치구이를 못 드시게 되었네요' 하는 표정이었다.

내일 오전에 일찍 와서 먹자고 하고 슈퍼에 들러서 참치와 상추를 샀다.

 

돌아와서 상추 쌈을 함시 대신, 아구아구 먹는 날 보더니.....

결혼 전에는 아주 교양있는 사슴같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저렇게 상추쌈을 입이 터져라 먹으며, 요즘엔 뭘 흘리기도 하고 콧물까지 흘리기도 한다며 흉을 본다.

아무래도 가슴에 옛날 초등학교 입학생처럼 가슴에 손수건을 달아줘야겠다면서 킥킥거린다.

 

그래도 우린 서로 서로 욕이나 거친 언행을 하지 않는,

꽤 교양있는 어른이고 부모라고, 누가 들으면 손이 오글거릴 자화자찬을 서로하면서 킥킥 거렸다.

우린 나르시시즘에 빠진 에고이스트들인 것이다.

칭찬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끼리 칭찬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조금은 허전한 일이다.

 

오늘은 가장 많이, 오래 걸은 날이다.

항상 낮에 한번은 아파트로 돌아와서 쉬거나 점심을 해결했는데

오늘은 점심까지 해결하고 들어왔으니 오래 밖에서 머물렀고 그만큼 많이 걸었다.

쓰레기는 오후 9시 이후에 내다 놓으면 된다고 하여 억지로 9시까지 졸리운 걸 참고 쓰레기 봉지를 버리고 나서 잤다.

이스탄불에서 일주일째 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