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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터키 - 이스탄불에서 5일째

육촌형수께서 별세 하셨다는 연락이 왔다.

멀리 있어도 소식을 받을 수 있어 좋기도 하지만 참석할 수 없어 죄송스럽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시던 분인데 퇴임하고 나서 언제부턴가 치매 소식이 전해졌었다.

멀리 와 있으니 또 다시 결례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뉴스에서는 유럽 폭설로 이런 저런 사고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여기 이스탄불이 비교적 포근한 남쪽의 해안가라서 다행이지 

거의 48시간 내린 비가 기온이 낮아 눈으로 내렸다면 엄청났을 것이다.

오늘도 종일 비 예보다....

 

오늘은 카리예 박물관을 가기로했다. 

트램을 타고 가서 중간에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트램에서 내려 물어물어 버스 타는 곳까지 왔다.

어느 버스를 타야하는 줄 몰라 카리예 뮤지엄을 운전 기사에게 말하니...못 알아들었다.

내리는 정거장 이름을 이야기 하니 그제서야 뒤에 있는 버스를 타라고 일러 주었다.

 

이번 버스 기사는 우리에게 카리예 뮤지엄을 가느냐고 묻고는

정거장도 아닌 데도 박물관 가기 편한 곳에 세워주고는 손으로 가는 길을 가르키며 내려주었다.

비가 오는날 교통편을 갈아타고 오느라 힘들었는데 친절한 운전기사 덕분에 기분이 호전되었다.

내려서 휴대폰 네비를 보며 카리예 뮤지엄을 찾아가는데, 오늘따라 이 녀석이 심술을 부리는지

큰 길을 두고 골목길로 안내하는 바람에 골목길을 돌고 돌아 찾아가게 만들었다.

원래는 성당으로 사용되었던 곳인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작은 조각으로된 모자이크가 일품이다.

어떤 사람은 이 모자이크 작품을 다시 보기 위해

망원경을 사 가지고 다시 보러 온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신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던가보다.

나는 그 정도로 많은 점수를 줄 만큼 가치가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았다

밖에서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와~~하고 감탄사를 내곤 했다.

 

박물관을 나와 걷는 중에 만난 카리예 카페에서 따뜻한 홍차를 한 잔 마셨다.

카페에도 손님은 모두 남자들 뿐이다. 동네 남자들이 마실나와 담소를 나누는 풍경으로 보였다.

지금껏 먹지도 않던 홍차를 여행와서 많이도 마셨다.

여행 끝나고 나서도 홍차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버스를 타고 다시 트램을 타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히포드롬 광장에 있는 이슬람 박물관에 들렀다.

박물관을 나와 오는 도중에 함시(멸치 튀김)를 먹자고 전에 갔던 곳에 들어갔더니 주말에는 멸치튀김을 팔지 않는단다.

우리는 터키 전통음식인, 우리의 만두같은, 괴즐레메를 시켰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였다.

 

이슬람교도들, 더구나 여자들은 사진에 대한 거부감이 클 것 같아서 꼭 허락을 받게 된다.

하지만  주인 여자는 히잡을 두르지도 않아서 이슬람교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도 게의치 않는 사람처럼 활달하고 거리낌이 없었다.

지난번에 함시를 시켜 먹을 때도 우리가 어떻게 먹어야하나? 하고 잠시 망설이니까

거침없이 손으로 한마리를 집어 입에 넣더니, 이렇게 먹으라고 동작으로 알려주었었다.

쵸르바도 함께 시켜서 먹었다.

이곳 쵸르바가 어제 다른 곳에서 먹던 쵸르바보다 맛있었다.

소금을 친 요구르트를 먹겠느냐고 해서 함께 먹었지만, 우리나라 요구르트 맛과는 달랐고 그다지 당기지는 않았다.

 

 

괴줄레메 만들기.....

 

 

아직도 비가 내린다. 거의 48시간을 내리는 것이다.

잠깐 낮잠을 자고 나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가는 길에 음식점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남자가 아주 수줍은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니하오'라며 인사를 한다. 

그런 사람은 신뢰가 간다. 만약 우리가 음식점을 찾는 중이라면 당연히 그 사람이 이끄는대로 갔을 것 같다.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종착지이자 유럽으로 가는 출발지인 시르켈 역을 찾아갔다.

트램을 타고 시르켈역에 내려서 기차 역사에 들어서니 오래된 역사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시르케지 기차역의 내부 모습을 찍고 싶던 차에 마침 고양이 한마리가 앉아 있어서

자연스럽게 고양이와 함께 역사 안의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과 함께...

 

사진을 찍다보니 여기 남자들 대부분이 길지는 않지만 수염이 더부룩하다.

우리나라 남자들처럼 깔끔한 게 좋단다.

우리나라 대부분 여자들은 지저분해서 삻어한다며 날더러 빨리 수염 깎으란다.

여행 온 이후 한번도 수염을 깎지 않았다.

 

길을 가는데 한 남자가 일본에서 왔느냐, 영어 할줄 아는냐며 묻는다.

이유없이 거칠게 물으며 느닷없이 끼어 들어와서는 꼬치꼬치 묻는 사람들은 일단 거부감이 인다.

더구나 어두운 거리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야간 조명을 받고 있는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를 보고 광장을 둘러보았다.

언젠가 한 번은 밤에 본 모습을 찍고 싶었던 참이었다.

빗물로 인해 거리가 번들거리는 것이 사진을 찍을 때 조명처럼 빛이 났다.

 

술탄 아흐멧 영묘에 들렀다.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다. 그냥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우리나라 삼대에 걸친 무덤 처럼 앞 쪽에 작은 것 뒤에는 큰 관처럼 생긴 것들이 들어차 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호피 무늬의 값비싼 장신구를 걸친 풍채좋은 여자가 사진을 찍고 있다 나갔다

그런데 바닥을 보니 장갑이 떨어져 있어서 누가 떨어트렸겠거니 찾으러 오겠지....

했는데 그 여자가 다시 들어오더니 두리번 거리면서 찾는 모양새가 그 장갑의 주인인 듯 했다.

손가락으로 장갑이 떨어진 방향을 가리켰다. 찾아서  끼고 나오더니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돌아오면서 장을 보았다. 우유, 닭고기, 마늘을 사고, 버거킹에서 간식을 사들고 돌아왔다.

늦은 밤 어김없이 어제와 같은 기도 시간에 다시 아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마음 속으로 내일은 비가 오지 말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조카의 대입이 순조롭기를 원하는대로...이루어지기를 함께 기원했다.

우리 오남매의 아들, 딸 중에서 막내로, 마지막 대입을 치루는 조카다.

 

<여기는 모든 것이 너무나 노후되었다. 낡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구식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유행이 뒤떨어졌다는 의미도 아니다. 단지 노후되었다. 나는 이말 을 좋아한다. - 오르한 파묵>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터키의 오르한 파묵의 이 이야기가 이스탄불을 설명하는 말로 참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묵의 이 글을 읽고는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이 겹쳐보인다.

나는 나이 들었다. 구식이라는 말이 아니다. 꼰데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나이 들었다.

 

아야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