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를 떠나는 날이다
공책에 날짜 별로 영수증과 미술관 입장권을 붙였다.
남은 시간 우리가 안 간 길을 가 보자고 동네 골목을 다녔다.
어제 서울에는 소나기가 한 차례 내렸다는 날씨 기사에 물을 주지 않은 화분들이
그래도 말라 죽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웃 분이 선물한 분을 그대로 방치한 듯해서 죽을까 걱정이다.
오늘 저녁과 내일 탈 수 있는 남은 수상 버스인 바포레토 7일 권을
기차역에서 베네치아로 오는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면 주고 떠나자고 조금 일찍 나섰다.
체크 아웃을 하고 도착한 기차역에서 아무리 내리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아도
한국인이라고 여겨지는 승객들은 보이지 않았음은 물론, 동양인 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다가 나오는 동양인은 중국인임이 분명한 얼굴 모습이었다.
같은 동양인이라도 중국인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정도 구별이 되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한국인으로 보이는 40대 초반의 부부가 내렸다.
터미널을 나가려는 남자를 내가 뛰어가서 한국 분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표 이야기를 했더니 괜찮다는 것이었다.
나의 호의에 대한 정중한 거절이라기 보다는 약간의 경계심을 가진 거절이라고 느껴졌다.
갑자기 맥이 풀렸다.
한국인일까? 해서 눈여겨 본 젊은 여자 둘은 내리자마자 감탄사를 내 지르는데 일본어였다.
호의를 베풀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기차역에 막 내렸는데 어떤 낯선이가 한국인이라며 뛰어와서 그랬다면
경계심이 먼저 작용해서 엮이기 싫어 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베풀고 싶을 때 베푸는 것이 진정한 베풂이 아니라,
남이 도와 달라고 요청할 때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베풂일 것이다.
우린 한국인 찾기를 포기하였다.
12시 50분 발 밀라노행 열차는 12시 40분이 되어도 전광판에 플랫홈 넘버가 나오지 않았다.
놓친 열차가 아름다운게 아니라 기다리는 열차가 아름다운 것이다.
출발이 임박해서야 7번 플랫홈이 찍혀서 우린 서둘러 캐리어를 끌고 뛰다시피 걸었다.
작년 여름 푸랑크푸르트에서 캐리어를 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차에 타고서도 우린 불편함을 감수하고 우리 좌석 밑에 캐리어를 밀어넣었다.
한번 각인된 경험으로 인해 우린 기차를 탈 때마다 이럴 것이다.
이제 베네치아를 떠나 밀라노로 간다.
리알토 다리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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