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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82년생 김지영

 작가가 방송 작가 경력이 있기 때문인지

소설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서 나레이터가 이야기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 첫 부분에 주인공의 허망한 결말이 나와 있어서 그런지

읽는 중간 중간 주인공의 즐겁고 화목한 광경을 그린 대목이 나와도 애잔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인 82년생 김지영은 그래도 우리나라의 중간 이상의 삶을 사는 여성이라고 보여 진다.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퇴직하셔서 이 일 저일 새로운 일을 하면서 쓴맛도 보지만

그런대로 안정된 생활에 아파트도 가지고 있고, 언니는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하소연을 들어주고 등을 다독여 줄 꽤 괜찮은 남편도 있다.

그럼에도 김지영씨는 미치고 만다.

그러면 주인공 김지영씨 보다 힘든 삶을 사는, 이 땅의 또 다른 여성 김지영씨 들은

어떻게 미치지 않고도 이 세상을 여성으로서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

 

1982년 여성 중에서 가장 많은 이름이 김지영이라서

소설 제목을' 82년생 김지영'으로 했으리라.

 

년도 별 우리나라의 사회 속에서 핍박받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 넣어서

우리나라의 82년 생 또는 그 또래 여성들의 공감을 얻기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더욱 삶이 더욱 어려웠을

72년생, 62년생, 52년생 김지영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아~~맞아 저 이야기 바로 내 얘기야~'

읽으면서 이렇게 동감하는 여성들이 많으리라.

 

어쩌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제목 자체가 보여주듯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차별의 모습들, 과거에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

김지영씨가 아니, 우리 사회 또래 여성들이 겪었고, 겪었을 법한 모든 여성 차별의 장면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내 누이들의 삶도 떠올려 보면서 읽었다.

 

지금은 페미니스트적 사고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얼마 전만 하더라도 여성들의 차별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사회에 진출하여 차별받는 것은 물론이요.

뱃속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시대별로 발생한 다양한 여성 차별의 어려움을 주인공의 일상을 빌어 나타낸다.

 

나를 포함한

오랜 세월 속에 굳어져서 무엇으로도 녹여지지 않을 남존여비의 고정관념을 가진 기성세대의 남자들.

그 남자들이 읽는다면

조금이라도 한 걸음 변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파리 튈릴리 정원에서>

 

 

-김지영씨는 10년 만에 다시 진로를 고민했다.

10년 전에는 적성과 흥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훨씬 더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했다.

최우선 조건은 지원를 최대한 자신이 돌볼 수 있을 것. 도우미를 따로 고용하지 않고 어린이집에만 보내고도 일할 수 있을 것.

 

-설렘은 잦아들고 무기력이 찾아왔다.

 

-김지영씨는 새로 생긴 카페에서 할인 행사를 하는 곳에서 1500원에 파는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서 유모차를 끌고 공원으로 갔다.

그때 옆 벤치의 한 남자 하나가 김지영씨를 흘끔보더니 일행에게 뭔가 말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간간히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 상팔자야. ....한국여자랑은 결혼 안하려고....

김지영씨는 뜨거운 커피를 손등에 왈칵 쏟으며 급히 공원을 빠져나왔다.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거야.

오빠,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 아니라 1500만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동으로 내가 뭘 사든 그것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돼?

 

-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초셋째 아 이상 출생 성비는 남아가 여아의 두 배를 넘었다.

어머니는 혼자 병원에 가서 김지영 씨의 여동생을 지웠다.

아무것도 어머니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모든 것은 어머니의 책임이었다.

 

-김지영씨가 스무 살이던 2001년에는 여성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면 여자라는 꼬리표가 슬그머니 튀어나와 시선을 가리고,

뻗은 손을 붙잡고, 발걸음을 돌려놓았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2000년대에 대학 등록금은 물가상승률보다 배 이상 올랐다.

 

-“오후에 논술학원 갔다가, 밤에 카페 알바하고, 하숙집에 와서 좀 씻고 하면 벌써 2시야.

그때부터 논술 수업 준비하거나 애들 과제 첨삭하거나 그러다가 눈 붙이고, 공강 때는 너도 알아시피 나 근로하잖아.

솔직히 너무 피곤해서 강의 시간엔 계속 졸아. 대학 다닐 돈을 버느라 대학생활은 엉망이야. 학점도, , 진짜 거지 같아.“

이렇게 이야기하는 친구를 보다는 훨씬 김지영씨는 나은 편이다.

 

-태도가 단정하고 깔끔해서 김지영 씨도 항상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설마 싶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더 유심히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 선배의 목소리가 맞았다.

취했을 수도 있고, 쑥스러운 것일 수도 있고, 친구들이 괜한 짓을 할까 봐더 과격하게 말했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김지영씨의 처참한 기분이 아나지지는 않았다.

일상에서 대체로 합리적이고 멀쩡한 태도를 유지하는 남자도, 심지어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에 대해서도,

저렇게 막말을 하는구나. 나는, 씹다 버린 껌이구나.

 

-여자는 안된다는 비아냥이 돌아왔고, 선배는 여자를 자꾸 안 되게 만드니까 이러는 거라고 대답했다.

 

-우리 학교도 웃기지?

너무 똑똑해서 부담스럽다고 할 때는 언제고, 학교 지원 하나 없이 혼자 준비해서 합격하고 나니까 자랑스러운 동문 타령이야.

  

-김지영씨는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목에는 아이디카드를 걸고, 한 손에 지갑과 핸드폰을 한꺼번에 들고, 무리 지어 거리를 걸으며, 오늘은 뭐먹지? 하는 이들이...

 

-안 그래도 김지영 씨는 졸업반이 되어 취업 준비를 시작한 남자 친구에게 도움이 죄지 못해 미안했다.

같은 상황일 때 남자 친구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손끝이 저리도록 애틋했다. 하지만 김지영 씨의 일상도 전쟁이었고,

긴장을 놓으면 당장 피투성이가 될 순간순간에 다른 누군가의 안위를 살필 여유가 없었다.

서운함은 냉장고 위나 욕실 선반 위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계속 무심히 내버려두게 되는 먼지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 사람 사이에 쌓여갔다.

   

-결국 부부중 한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 한사람은 당연히 김지영씨였다.

 

-김지영 씨가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손목을 안 쓸 수가 없어요.

김지영씨가 푸념하듯 낮게 말하자 할아버지 의사는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렷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 쓰고,

세탁기 끝나면 다시 걸어나와 건조대에 올가지는 않아요....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 사실 정신과 다니고 있어. 아무렇지 않은 척 일부러 더 크게 웃고 다니지만 정말 미칠 것 같아.

  82년생 김지영(오늘의 젊은 작가 13)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지음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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