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부 마지막인 4권을 숙제하듯 끝냈다.
그동안 읽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었다.
아마, 등장인물들이 많고,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많아 속도감이 떨어져서 그랬을 것이다.
읽으면서 주인공급에 해당하는 최치수와 최치수의 어머니인 윤씨 부인이 죽는다.
이야기의 중심축에 해당하는 인물이 죽다니.
드라마를 통해 보아서 이미 알고 있는 줄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갑작스런 낭떠러지를 만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영화 '왕좌의 게임'에서 주인공이라고 여겼던 숀빈이 죽는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누가 그랬던가.
토지의 주인공들은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다고....
아마, 작가는 역사적 위인을 그리려하기 보다는
살아가는 이 땅의 평범한 민초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가감없이 그리려 했을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온 우리 조상들은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측은지심에 지금 누리고 있는 우리들의 일상은 그들의 비해 상상하기 힘든 천국이라 여겨진다.
나의 이런 생각에 그 당시 사람들은 그런 삶이 당연한 것이라 여겨 별로 힘들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란다.
읽는내내 안타까움이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구천이에 대한 안타까움, 용이와 월선이에 대한 안쓰러움, 모자 지간임에도 냉냉했던 최치수와 윤씨부인,
그리고 별당아씨 마저 죽고 천애고아가 되어버린 어린 서희와 구천이 김환의 회한.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도 못하고 종처럼, 없는 사람처럼, 모르는 것처럼 살아온 불우한 어린 시절.
그 상처는 얼마나 깊은 것일까?
자신에게 상처준 사람들의 원한은 얼마나 큰 것일까?
그런 구천이도 또 다시 배다른 형 최치수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지 않았던가?
거지차림으로 다시 돌아온 구천.
그는 모든 것을 달관한 것처럼 그려진다.
체념일까? 엄청난 상처를 받은 사람의 단단함 일런지.
불현듯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생각났다.
'나에게 왜 그러셨어요?' 묻고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은 없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상처를 준 일은 기억엔 없다.
하지만 이 생각도 오로지 나의 교만한 생각 아닐런지....
어차피 홀로 사는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상처는 주고 받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원한과 증오로 연결되지 않을 정도의 상처라면 이겨내야 할 것이라 여겨진다.
태백산맥을 읽을 땐, 전라도 사투리가 입에 붙은 듯하더니, 토지를 읽을 땐, 경상도 사투리가 뱅뱅 입에서 돈다.
만화와 함께 보니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했을지 생각하며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어제는 화단에 앉아 책을 보다가 잡초를 뽑다가 하며 하루를 보냈다.
박경리 선생이 생전에 호미들고 밭 일을 하듯....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