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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장독에 햇빛이 반짝 거리던 어느날

 지난 주에는 동생네 집 된장과 간장 가르는 날이었고

이번 주에는 우리집 된장, 간장 가르는 날이다.

메주덩이를 건져서 화단 한쪽 바위에 걸터앉아 비닐 장갑을 끼고 주물럭주물럭 손으로 으깨어

장독에 넣고 꼭꼭 손으로 눌러 담았다.

메주를 다 건져낸 간장은 펄펄 끓인 후 독 안에 쏟아 부었다.

"이젠 나없이 혼자서도 장 담글 수 있겠지?~~ㅎㅎ"

간장, 된장 담근 경력이 30년이 넘었다면서 으시대듯 나에게 말하였다.

 

 

 

메주덩어리를 으깨며 앉아 반짝 거리는 장독을 보고 있으려니 오래 전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로 기억된다.

그날도 오늘처럼 날이 화창하고 좋은 날이었다.

그날을 그렇게 화창한 날로 기억하는 것은 바로 오늘처럼

반짝반짝 장독대의 장독에 햇빛이 반짝거린 그런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동네를 배회하다가 어떤 집에서 부부 싸움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시 다들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던지라 담장이랄 것도 없이 그저 시늉 뿐인 낮은 철조망이

집과 골목, 또는 집과 집들 사이를 경계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철조망 사이로 소리뿐 아니라 부부 싸움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그런 부부 싸움은 흔히 보아왔듯 말다툼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툇마루에 앉아 말다툼하던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소리가 조금 크고 내가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고성이 몇 번 오가는가 싶더니 화가 몹시 난 아저씨가 분을 참지 못하고

그만 마루 밑에 있는 어른 팔뚝 정도 굵기에 해당하는 각목을 집어 들었다.

차마 아주머니를 때리지는 못하고 마당으로 내려오더니 장독대로 향하였다.

장독대로 간 아저씨는 그중에서 가장 큰 독인 내 키 만한 장독 앞에 섰다.

그리곤 그 독의 가장 볼록한 부분을 향해 야구 방망이 휘두르듯 휘두른 것이었다.

얼굴 표정에서도 화가 몹시 났음을 알 수 있었다.

 

와장창~~장독은 구멍이 나는가 싶더니 이내 무너져내리듯 박살이 났고

콸콸콸 ~ 독안에 들어있던 검은 간장을 순식간에 마당으로 토해냈다.

내 가슴은 콩닥콩닥~ 무서운 아저씨의 얼굴에 도망치듯 골목을 돌아 나왔다.

지금도 그 독이 깨지는 순간의 모습과 간장이 쏟아지는 장면, 그리고 아저씨는 생각이 나는데

아주머니의 얼굴과 소리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강하고 자극적인 장면 속에 묻혀 기억 속에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간장을 끓이고 메주를 주물럭거리며 생각해보니

그 간장이 얼마나 정성을 다해 만든 간장이었을지 생각 할수록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분을 참지 못해 독을 깨트린 아저씨는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 그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난 무서워서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아저씨도 어리지만 유일한 목격자인, 나와 마주치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따스한 햇살이 장독을 반짝거리게 하던 그 화창한 봄날의 안타까운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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