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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그때를 아십니까?

참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두고 두고 회자 될 총선이 끝났다.

이젠 누가 선거 참패의 주범이고 누가 선거 승리의 일등공신인지를 놓고 또 말이 많을 것이다.

 

투표 결과를 인터넷과 TV를 통해 현란한 그래픽과 함께 보고 있자니 오래전 생각이 난다.

하지만 오래 전엔 이처럼 한가하게 집에서 보며 들을 수가 없었다.

 

그땐 투표가 끝나면

개표를 하러 학교 선생님들이 개표 종사원으로 동원되었었기 때문이다.

 

일일이 손으로 투표 용지를 분류를 하고 100 매씩 세어 고무 밴드로 묶어서 

옆으로 넘기면 긴 테이불 끝에서는 다시 검표 작업을 했다.

한참 후에서야 드르륵...돈을 세는 기계도 동원되었지만

내가 처음 개표 업무를 할 땐 거의 대부분의 일을 손으로 하였다.

일일이 손으로 세는 작업을 밤새워하는 일은 꽤 고단한 일이었다.

 

가끔은 밤새 개표를 하고 새벽 동이 터올 무렵 당락이 결정되면

가끔 당선인들이 인사를 하러 오면서 음료수를 사들고 와서 돌리기도 했었다.

 

당연히 당선 될거라고 여겼던 한 중진의원의 부인은

개표 결과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개표장에까지 와서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하고는

낙선이 확실시되자 졸도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었다.

 

서울 중심부 가까운 곳에서 개표를 할 때는 신문사와  방송사가 지근 거리에 있어서 기자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한 일간 신문에 개표를 하는 내 옆모습이 사진에 나와서

아이들이 선생님 신문에 나왔어요. 하고 신기해 하기도 했었다.

 

한 표 한 표에 촉각을 곤두세운 각 당의 참관인들은

자기 후보에게 불리하지나 않을까 분류하는 우리의 손을 눈에 불을켜며 들여다 보았다.

가끔 저거 무효표 아니냐고 항의를 하거나, 저게 왜 무효표냐고 따지기도 했다.

그러면 일일이 유무효표 구분 책자를 들어 확인을 해주거나

담당 선거관리위원에게 문의 해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개표를 하면서도 궁금했던 것은

전국적인 개표 상황이 어찌돌아가고 있는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던 시절이 아니라서 정작 개표를 하는 우리는 TV조차 보지 못하는지라

선거 결과가 어찌되는 지 몹시 궁금하였지만 알 도리가 없었다.

가끔 소형 라디오를 가지고 와서 귀에 리시버를 꽂고 개표하는 사람의 중계를 통해

결과를 얻어 듣기도 하였지만 궁금증이 해소되기에는 부족하였다.

 

당락이 일찌감치 결정이 된 경우에는 개표하는게 맥이 빠지기도 하지만

새벽까지 근소한 차이로 엎치락 뒤치락 하는 경우에는 긴장 속에 졸음을 쫓으면서

개표를 하느라 더욱 피곤이 가중되고 개표 속도는 늦어지기 일수였다.

 

개표를 마치고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면 전국적으로 개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시청한 식구들에게 묻곤 했다.

이젠 여선생님들이 많은 데다가 수업 결손 문제로 교사가 개표업무에 동원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얼마 지나지않은 듯 싶은 일 들인것 같은데 돌이켜보니

세월이 많이도 흘러 정말 '그때를 아십니까?'라는 프로에나 나올 법한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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