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일지

그 집 앞

나의 큰 누이가 중학생 때 학교에서 내 준 과제라며

테가 나무로 되어 있는 헝겊 수예 틀에다가 수예를 놓는 걸 본 적이 있다.

새 라든가,나무. 꽃 등을 색실로 한 올 한 올 일일이 손으로 수를 놓았다.

공책 크기의 수예작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기간은 몇 달은 걸렸던 것 같다.

 

이혜경 작가는 그렇게 문장을 써 나간 느낌이 든다.

글자하나 단어하나를 새기듯 그리듯 써 나간다.

그래서 일까? 섬세한 상황 묘사에 감탄을 하며 읽게 된다.

그런데 그런 감탄 하느라 줄거리를 놓치곤 한다.

나무에 감탄하느라 숲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까?

하지만 줄거리가 무슨 상관이랴.

작가의 감각적이고 섬세한 묘사의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감을 얻는다.

 

이를테면

-도르르, 가을날 마른 나뭇잎처럼 속이 말릴 때,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내 안에 끊임없이 모래를 쌓아놓을 때

그 모래가 바람결 따라 사르륵 움직이며 몸 안의 습기를 다 빨아들이는 듯 느껴질 때,

나는 마른 나무둥치에 물을 주듯 맥주 캔을 따곤 했다.

어쩌면 이 글은 나는 쓸쓸한 가을날 허전한 마음을 맥주를 마시며 달래곤 했다. ’정도로 쓸 수 있는 글일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아주 섬세한 표현으로 문장 하나하나를 새기듯 써나간다.

 

이혜경 작가를 또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축구 해설을 할 때 곧잘 비교가 되던 두 사람 차범근과 신문선.

 

선수가 공을 잘못 찼을 때 두 해설자의 해설을 비교해 보면,

담백한 차범근은 ~~공이 빗맞았군요.”이 한마디로 끝이다.

그런데 신문선이 해설을 하면,

. 안타깝군요. 왼쪽 디딤발이 공의 오른쪽에 가 있어야 하는 것을

공의 앞쪽에 가는 바람에 차는 오른 발의 발끝에 맞아 공이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네요.” 가 되듯이.

이혜경의 글을 축구 해설에 비유하자면 신문선의 해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집 앞>

 

 #.본부인에게서 아이가 생기지 않자 새로 여자를 들였다.

새로 들어온 여자에게서 아이가 태어났다. 여자 아이였다.

바로 그 아이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전처도 함께 산다.

큰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일부이처 상황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식구가 누구누구냐고 해서 엄마, 아빠, 큰엄마라고 하니까.

돌아온 대답이 그러면 큰아빠는?

이렇게 묻는 바람에 자신이 다른 가정과는 많이 다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또 자라면서.....받은 충격들이 얼마나 컸을지....

시집을 가서도 그런 사실이 마음의 큰 짐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시어머니도

자신과 똑같이 본부인의 딸이 아니었다는 사실.

 

##

 

-빠른 걸음으로 트랙을 도는 중년 여인에게서는,

활기참 대신 억눌린 정열의 음습함 같은 게 드러난다.

무엇에 들린 듯 한 저 빠른 걸음을 어떤 것으로도 제지하지 못할 것 같다.<'그 집 앞'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내들은 대낮에도 러닝셔츠 바람으로 골목을 어슬렁거렸고

무위를 죽이기 위해서일 싸움들이 벌어지곤 했다. 그만그만한 크기의 방구석에 누워 천장의

치졸한 꽃무늬나 헤아리기엔 노동으로 단련된 근육의 발달이 지나쳤다.<'우리들의 떨켜'에서>

 

그 집 앞

<그집앞/이혜경/문학동네>

'독서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구리를 먹어라.  (0) 2014.06.10
트렌드 코리아 2014  (0) 2014.06.04
은어낚시통신  (0) 2014.05.09
살인자의 기억법  (0) 2014.03.22
눈먼 자들의 도시  (0) 2014.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