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이 서점에 나오게 되어 서점에서 분류하여 진열을 할 때,
한 서점 직원은 윤대녕의 소설책 <은어낚시 통신>이 처음 출간되어 나왔을 당시에
이 책이 낚시관련 서적이려니 생각하고 낚시 관련 책들 사이에 꽂아 놓았단다.
서점 주인은 책을 잘못 분류하여 꽂은 이 직원을 심히 꾸짖었다 한다.
“이 사람아~~ 통신이잖아, 통신!”이라고 외치며
컴퓨터 통신 코너에 손수 꽂았다는 믿지못할 이야기도 있다.
선배에게 선물로 받은 이 책은
윤대녕의 첫 책이어서 당연히 나도 윤대녕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
어쩌면 나도 제목만 보고는 그런 생각을 했을런지도 모른다.
이 책을 처음 펼쳐들었을 때 서문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서 다시 한번 읽어보며 옮겨본다.
봄에 철 지난 날에 첫 책을 펴 낸다.
항용 그러하듯이 부친을 비롯한 선대들의 영향,
말하자면 내유년기를 지배했던 아름다움 혹은 억압의 상징체계가 없었다면 글을 쓰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가까이 있을때는 멀리 도망 칠 궁리를 하느라 새벽이면 잠깨어 문 밖을 흘겨 보기도 했지만
이제사 멀리 있게 됨으로 해서 그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내게 글을 가르쳐준 조부와, 삶의 거룩함과 비애를 일찍부터 체험하게 해준 부친과
또한 산다는건 혼자 조용히 닳아지는 일이라는 걸 묵시적으로 웅변해 주는 부친의 형제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내가 작가라는 것을 비로서 깨달은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제법 마음의 수난을 겪으며 번잡하게 살아온터라
그동안에 한 번 오지게 쓰는일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가 반편의 미학주의와 반편의 섭리주의자로 살다보니
늘 현실 감각이 뒤떨어져서 남들처럼 삶에 대해 억세지기 보다는 뒷전으로 쳐져
저 신화라 부르는 원형의 공간으로 돌아갈 마른 꿈만 뒤적이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라는 건 아주 현실적인 존재라는 사실
이를테면 현실보다 더한 현실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세상에 속해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날고기와도 같은 첫 책은 그런그런 뜻을 담고 있다.본디 자리로 회양한 느낌이 드는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도 멀리 있어 소중한 존재가 있다. 그리움으로 살아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대 앞으로도 한 천년 동안 그토록 멀리 있어다오 밤마다 헛발질 하며 달려 갈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