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박완서라는 작가를 처음 알았을 때
박완서 선생의 사진을 보고는 놀랐던 적이 있다. 우리 남매 모두....
엄마와 많이 닮았고 특히, 막내 이모와는 친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비숫하다.
그러고보니 같은 박씨 성에다가 엄마의 사촌들이 돌림자인 '서'자 돌림이다.
엄마가 어릴적 이야기를 하실 때 자주 등장하던 이름이 남서 완서....등 '서'자 돌림의 엄마의 사촌이름이었다.
그런데다가 박완서 선생님이 내가 살던 돈암동에 살았었는데 바로 우리 집에서 직선 거리로 몇 십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는 거리라는 게
남같지 않게 생각했었다. 박완서의 글에 종종 등장하는 돈암동,돈암동 천주교 성당,신안목욕탕 등...
40대가 되어 뒤늦게 등단해서 왕성하게 활동을 한 박완서의 산문은 그 깊이가 여느 작가와 달라 꼼꼼하게 읽게 된다.
박완서의 어머님이 극성이었다는 건
그의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서도 그 꼬장꼬장함은 여전했었나보다.
그리고 꽃밭을 가꾸면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대목은
손바닥 정원을 가꾸는 나의 심정과 비슷해서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80을 훌쩍 넘어서까지 왕성하게 글을 썼던 작가.
긴 세월을 살아온 삶들이 녹아있는 호미.
그렇게 살아온 세월의 허망함을 그는 담담하게 표현한 책이다.
나이가 들어 욕망을 내려놓으면 다른 사람의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더니
작가가 모든 사람,사물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 70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상연하고도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거둔 게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해도 늘 내 안팎에는 김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
-.내가 처녀작을 쓸 때 잘 안 써져서 때려치울까 하다가도 이게 만일 당선이 돼서 내가 신문에 나면
엄마가 얼마나 으스댈까,아마 딸 기른 보람을 느끼겠지,하는 생각이 채찍이 되어 계속 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엄마는 말년에 우리 집에 와서 지내신 적이 많았는데 엄마가 오실 때마다 나는 내 책을
엄마의 손이 못 닿도록 서가 맨 위 칸에 꽂고도 안심이 안 돼 책 제목이 안 보이게 뒤집어 꽂아놓곤 했다.
엄마가 읽을까봐 겁이 났다.
내가 <휘청거리는 오후>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나서 기자가 엄마에게 인터뷰를 청한 적이 있다.
따님 소설을 읽은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엄마는 싸늘하게 '원 그것도 소설이라고 썼는지',라고 대답하셨다.
그 매몰찬 혹평은 나에게 오래도록 상처가 되었다. 나는 아마 생전 엄마를 극복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순간들도 남들 못지않게 많았고 ,
심장이 터질 듯이 격렬하게 행복했던 순간들은 지금도 가끔 곱씹으면서 지루해지려는 삶을 추스를 수 있는 활력소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크고 작은 행복감의 공통점은 꼭 아름다운 유리그릇처럼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그런 불안감이 없다.
아무리 4월에 눈보라가 쳐도 봄이 안 올 거라고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변덕도 자연 질서의 일부일 뿐 원칙을 깨는 법은 없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나는 나의 밭에 있는 꽃을 자랑하고 싶어서
집에 손님만 오면 그걸 구경시킨다. 그러나 내가 기대하는 것만치 신기해 해 주는 이가 별로 없다.
어떤 친구는 마당에 피는 꽃이 백 가지도 넘는다고 해서 부러워했는데 이런 것까지 쳐서 백가지냐고 기막힌 듯이 물었다.
-.팔에 기브스를 하고나니 시도때도 없이 신경질이 나고 하는 일 없이 몸은 녹초가 되었다.
시간을 흐르지 않고 내 주위에 늪처럼 고여서 썩어가고 있는 것처럼 하루는 지루하고 무의미했다.
-침묵으로 말하는 분이야말로 신이 아닐까.
-.우리나라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와 있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비인도적인 대우가 거론될 때마다 나는 분개해 마지 않았고 창피해서 어쩔줄 몰랐다
겨우 그런 마음 때문에 나는 나에게 인종차별적인 생각이 전혀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만약 그들에게 우리나라 근로자와 동등한 봉급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면
과연 내가 선뜻 동의할 수 있을까. 못할 것 같다. 고작 그 정도가 내 휴머니즘의 한계다.
<박완서 산문집/호미/열림원>
'독서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먼 자들의 도시 (0) | 2014.02.09 |
---|---|
멈추지 않는 도전 (0) | 2014.01.11 |
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0) | 2013.12.01 |
심리학이 서른살에게 답하다. (0) | 2013.11.13 |
그들은 소리내 울지않는다. (0) | 2013.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