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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마음의 풍경

 

 쓸쓸함에 이렇게 분위기도 바꾸어 볼 겸 촛불도 켜보며 허전함을 달래보지만....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서는 집이 어딘가 휑하고 낯설다.

그럴리 없는데도 얼핏얼핏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목소리들도 들리는 듯하다.

아이들이 집을 떠난 지 오래되어 이젠 간혹 다니러 오기나 할 뿐인 생활이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그들이 떠난 뒤의 이런 마음, 기분은 좀체 면역이 되지 않는다.

 

나는 괜히 분주한 몸짓으로 아이들이 보다 펼쳐 둔 책들을 제자리에 꽂고,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넣는 등 남긴 자취들을 눈에서 치우고, 남편은 별반 보는 기색도 없으면서

TV를 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하릴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주기도 한다.

 

그 역시 이 볕 밝고 아름다운 가을날 오후를

단순하고 즐겁게 받아들이거나 일을 하기에는

뭔가 스산하고 허전한 그늘이 마음에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침묵으로 이어지는, 햇빛있는 오후시간은 아쉽도록 짧으면서도

정체 모를 막연한 불안감과 초조감 때문에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지루하게 흘러간다.

 

어린아이와 젊은이들이 없는 집에는 일찍 어둠이 찾아든다.

어둠이라는 물리적 현상과 적막감이라는 심리적 상태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빛깔로 집은 깊게 가라앉는다.

전등불을 켜고 낮에 아이들과 함께 먹고 남긴 음식들을 다시 데우고 점심상과 다름없는 저녁을 먹는다.

솜씨를 부려 장만했던 음식들은 가짓수도 많고 정성들인 것이건만 뜨겁게 데웠어도

갓 만들었을 때의 화려한 볼품도 향기도 훈기도 찾아볼 수 없다.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의 풍성함과 행복감과 미각들이 사라진 단지 ‘한 끼니’의 밥을 먹는다.

 

묵묵히 숟갈질을 하며 남편과 나는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앞을 바라보고 달려가기 바쁜 아이들의 발목을 잡으면 안된다거니,

 어떤 경우에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한다거니,

이런 쓸쓸함과 적막감은 당연히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한다거니....

 

 

# <마음의 풍경>중 오정희의 글이다.

우리 집의 어느날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마도 이렇게 아이들이 독립해 나간 중년의 어느 부부나 같은 풍경이 아닐까?

오정희씨의 글을 비롯한

여러 필자들의 잔잔한 이야기들이 작은 파장을 일으킨다.

이내 사라져 버릴 파장이지만 우리 삶의

어느 한구석 구석을 어루만져 줄 보석같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당신 마음의 풍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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