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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운수 없는 날

 내 자동차 키는 잃어버려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핸드폰의 단축키 5번을 누르면 소리를 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열쇠에 붙은 작은 화면에 내 전화번호가 뜨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내게 연락도 가능하다.

그런데 어제는 그만 술을 한잔 하고 차를 술집 근처 골목에 세워두고  친구와 2차까지 가서 늦게 귀가를 하였다.

 

오늘 아침 주머니를 보니 어디로 갔는지 자동차 키가 없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차에다가 키를 꽂아둔 채 주차 시켜 두고 온 것 같았다.

단축키를 누르니 아무 소식이 없다. 바로 택시를 타고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 보았더니,

걱정했던 대로 내 차를 누군가가 훔쳐 타고 갔는지,

 내 차가 있던 곳에는 내 차는 보이지 않고 낯선 짚차가 한 대 서 있었다.

 

다시 단축키를 눌러 보았다.

한참 후 웬 할머니가 골목 어귀에 나타나셔서는 내 키를 내 보이면서 당신 자동차 열쇠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 열쇠가 우리 대문 앞에 있는데 소리가 나길래 나왔다면서 당신이 두리번 거리면서 뭔가 찾는 것 같아 가지고 왔노라고 하셨다.

혹시 하얀색 옾티마 승용차를 보셨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모른다고 하셨다.

 

이걸 어쩌나~~

차량 도난 신고를 해야하나? 하고 있는데, 집에서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빠~~ 옆집 아저씨가 오셨는데, 아무래도 표정이 안 좋으셔~~, 어제 아빠가 바깥 화단에 높게 벽을 쌓아서,

 옆 집에 그늘이 져서 그거 따지러 오신거 같아."

 

참 오늘은 아침부터 정말 재수 없는 날이네.....

차 잃어버리고 아침부터 이웃집 사람과 실랑이도 해야 할 것 같아, 집으로 되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와서 막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집사람이 소리친다.

아니 " 지금 몇신데~~출근 안 할거예요? 빨리 일어나요?"

 

일어나긴 귀찮게 차도 잃어버렸고, 옆집 사람하고 구차하게 사정 이야기도 해야되는데......

짜증나게 소리를 지르고 그래.......하고 생각을 해보니......

아니!!!! 이게 뭐야? 내가 지금 외출했다가 어느새 침대에 누워있었지?

 

아니 그럼 차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내가 울타리를 친 것도 아니고?

그 모든 일들이 꿈 속의 일이었단 말인가?

휴우~~~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다른 날 같으면 찌푸린 얼굴로 일어났을텐데.....

오늘은 아주 상쾌하고 밝은 얼굴로 일어났다.

 

오늘 아침은 출근 직전인데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어떤 염세적인 철학자는 '행복이란 불행이 제거된 상태'라고 했다더니 바로 지금의 내 상황이다.

프로이트는 '창조주의 계획에는 인간의 행복은 애시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하였다는데 그건 틀린 말임에 틀림없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이렇게 행복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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