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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굴종의 열매

 

 

  비록 길을 잘 찾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특별하게 내가 모르는 곳을 찾아가는 여행을

한 적이 별로 없어서 네비게이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데에는 나보다는 훨씬 공간 감각이 좋고, 간 곳을 비교적 소상하게

기억을 하는 마가렛이 있기 때문에 초행길도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초행길은 집에서 간단하게 인터넷으로 길을 보고 주요 지점만 알고 가거나,

또는 지도를 보고, 아니면 물어서 가거나하고,실수해서 다른 길로 가거나 하면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그것이 훨씬 낭만적이고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내 자주성이요.주체성이요. 그것이 여행의 참맛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번엔 나혼자 초행의 먼길을 운전하여 가는 길인데다가 하도 비가 뻔질나게 오는데,

밤에 운전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서 아무래도 네비가 필요하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르는 산길을 비가 오는 밤에 혼자 운전을 해야한다면........무슨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결정적인 것은 얼마 전시골길을 가다가 과속으로 인해 한 장도 아닌 두 장이나 과속으로 법칙금을 물게 되고 보니,

속도 감시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는 규정 속도가 넘어가면 삐~~삐~~ 경고음을 들려주는 친절한 비서 네비양(?)있어야 했다.

 

주문한 최신형 네비게이션이 도착을 하여 장착을 하고 길 안내를 듣고,보면서 운전을 시작하였다.

이용을 하고 보니 이렇게 편리할 수가

내려서 모르는 곳 물어 볼 필요도 없고, 몇 m 앞에서 우회전 죄회전은 물론 어디 속도를 넘어 가지 말라고  상냥하고 어여쁜 목소리로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자는 세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말이 생겨났겠구나 싶다.

엄마, 마누라, 네비.......이렇게 말이다.

 

나도 이런 편리함에,기계에 굴종하는 대신, 기계가 주는

편리하고 달콤한 굴종의 열매를 따 먹게 되었다.

나의 주체성에, 나의 정체성에, 작은 구멍하나가 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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